|
|
|
단일 증류소 100% 원액만 사용… 신선하고 부드러운 특유의 과일향
맛 절반 이상 좌우하는 오크통도 5년간 교육받은 장인이 만들어
9월 론칭 25년산 직접 시음해보니 깊은 바닐라·시트러스 향 일품
"맛 좋은 아일레이(Islay) 싱글몰트가 코앞에 있는데 왜 일부러 블렌디드 위스키 같은 걸 마신다 말이오. 그건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려는 순간에 텔레비전 재방송 프로그램을 트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소.(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토록 찬양한 싱글몰트 위스키, 그 가운데서도 100% 수작업으로 만들어 전세계 싱글몰트 위스키 가운데 최고봉으로 통하는 윌리엄그랜트&선즈 계열의 '발베니'가 만들어지는 현장을 지난 주말 찾았다.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에버딘으로 1시간 반 가량을 날아와 다시 차량으로 한 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스페이사이드 지역 더프타운에 뿌리를 내린 수제 싱글몰트 위스키 발베니 증류소. 인구 4,000여명에 불과한 이 곳 작은 시골 마을에는 마을 주변을 흐르는 피딕(사슴)강을 젖줄 삼아 발베니와 윌리엄그랜트&선즈의 또 다른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피딕을 비롯해 글렌리벳, 맥켈란 등의 유명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가 한데 모여있다.
스코틀랜드는 최대 위스키 생산 지역으로 로랜드, 하이랜드, 스페이사이드, 아일레이 등 4곳으로 구분된다. 그 가운데 스페이사이드 지역의 싱글몰트 위스키는 천혜의 자연환경상 잘 익은 특유의 신선하고 부드러운 과일 향을 낸다. 스카치 위스키는 원료에 따라 몰트와 그레인 위스키, 블렌디드 위스키로 나뉘는데 싱글몰트 위스키는 단일 증류소에서 나오는 100% 몰트 원액만을 사용해 제조된 것을 말한다. 증류소가 위치한 지역의 특색과 몰팅 방법, 사용하는 이스트의 종류, 증류기 모양, 오크통 종류, 원액 숙성 방법에 따라 다양한 개성을 지녀 자기 표현력이 강한 게 특징이다. 그레인 위스키는 저렴한 옥수수, 호밀 등을 사용하고, 블렌디드 위스키는 싱글몰트 증류소에서 만든 몰트 위스키 원액과 밀, 옥수수, 보리 등 곡물 원료로 만든 그레인 위스키를 혼합해 개성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샘 시몬스 발베니 글로벌 홍보대사는 "곡물로는 맛을 차별화할 수 없어 몰트를 섞어서 만든 것이 블렌디드 위스키"라며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인 맥아(보리)를 사용한 몰트 위스키가 맛이나 단가 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자신했다.
글렌피딕 증류소를 지나 등장한 발베니 증류소는 121년 역사를 그대로 간직해 고풍스러운 기운이 맴돌았다. 기화한 알코올이 스며들어 나무나 건물의 벽돌이 모두 거무스름한 빛을 자아내는 것 또한 이 곳의 역사를 말해준다. 발베니는 세계 위스키 업계 중 유일하게 보리 재배부터 경작·몰팅·증류·오크통 제작·숙성·병입 등 전 과정을 장인이 120년 내려오는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 '수제 위스키'라는 이름을 얻었다. 맛과 품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스페이사이드 계곡의 '발베니 성'에서 이름을 따온 발베니를가 만드는 과정은 맥아->당화->발효->증류->숙성->병입 등의 6단계로 나뉜다. 자체 경작지에서 수확한 최고의 보리만 선별해 침전소에서 48시간 동안 물에 담가 놓았다가 발아실로 옮겨 4~5일 가량 싹을 틔운다. 발아실에서는 장인들이 싹이 튼 맥아를 건조하는 '플로어 몰팅' 과정에서 일일이 맥아를 나무 삽으로 뒤집으며 건조하고 있었다. 증류소 안내를 담당한 데이비드 마이어 발베니 스코틀랜드 홍보대사는 "블렌디드 위스키의 경우 모두 기계가 하지만 장인들이 4시간마다 뒤집기 때문에 고루 건조된다"며 "이 과정에서 '몽키숄더'라는 직업병을 얻은 장인들의 노고를 기리기 위해 '몽키숄더' 몰트 위스키도 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석탄과 자연의 부산물에서 온 피트를 섞어 건조한 맥아는 방앗간에서 식혜의 재료인 엿기름으로 탈바꿈한다. 엿기름을 당화(mashing) 기계에 넣고 64℃ 뜨거운 물을 넣어 끓여 당즙을 만들고 이 즙을 냉각한 후 효모를 첨가해 발효시키고 오크통에다 이스트를 넣고 60~70시간 발효한다. 그러면 알코올 도수 7~8% 내외 술덧(정제되지 않은 맥주)이 된다. 맛을 보니 시큼한 향의 식혜와 비슷했다.
구리로 만든 단식 증류기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서는 술덧의 알코올 성분을 두 차례 증류해 뽑아내 70도 짜리 증류수를 오크통에 담아 숙성시킨다. 마이어 홍보대사는 "블렌디드 위스키는 24시간 계속 증류시키지만 발베니는 8시간씩 두 차례 증류한 액기스만 뽑아내 오크통에 담아 숙성시킨다"고 설명했다. 몰트 위스키 맛의 60%를 결정하는 오크통 제작소로 이동했다. 역시 다른 위스키 브랜드와 달리 6명의 장인이 갈대 등의 자연 재료를 접착제 삼아 만들고 있었다. 이들 역시 5년간 트레이닝을 통해 오크통을 만들 수 있는 마스터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크통에서 숙성이 끝난 위스키 원액에 천연수인 '로비 듀'를 첨가해 알코올 도수 40도 제품을 생산하면 이제 완전한 발베니 몰트 위스키로 태어난다.
이렇게 만든 발베니 중에서도 '발베니 더블우드 12년산'은 와인을 숙성시키는 쉐리(sherry) 오크통에서 파격적인 실험을 통해 탄생한 역작이다. 새로운 피니싱 기법을 통해 풍미의 경계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전설로 남은 이 시스템은 다른 몰트 위스키 업계로 유행처럼 번져 지금은 대부분 같은 방식을 쓴다.
마이어 홍보대사가 오는 9월 스코틀랜드에서 론칭하는 발베니 25년산을 오크통에서 직접 꺼내 들었다. 47.9도의 달콤하면서 섬세하고 깊은 바닐라와 시트러스 향이 코 끝을 찔렀다.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맛이었다. '더 몰트 위스키 컴패년(The molt whisky companion)'의 저자 마이클 잭슨은 "독특한 오렌지향의 가장 부드럽고 달콤한 싱글몰트 위스키인 발베니는 식사 후 가장 잘 어울리는 위스키"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식후주인 꼬냑을 겨냥한 위스키로 발베니가 꼽히는 이유다./스코틀랜드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