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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개혁과 박정희 신드롬

지난 6월 아부키르 해전이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에서 영국 해군제독 넬슨의 6대 손녀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6대 조카가 201년만에 화해의 악수를 나눴다. 바야흐로 영국과 프랑스 국민들이 화합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그런 두 나라가 정치적으로는 「결별」을 선언했다. 프랑스 집권 사회당은 최근 「21세기 사회주의자 선언」을 채택, 영국 노동당이 추구하는 「제3의 길」과 다른 방향으로 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조스팽 총리가 이끄는 프랑스 사회당은 선언문에서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가 주도하는 제3의 길은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했다. 동북아의 한국과 일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지난 21일 임진왜란 종전 400주년을 맞아 옛격전지 행주산성에서 권율, 이순신장군의 후손과 당시 일본의 조선파견군 총사령관이었던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의 후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에서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경제를 그림자처럼 따랐던 한국경제는 IMF사태를 계기로 일본 탈피를 서두르고 있다. 그러자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를 비롯한 일본의 일부 경제학자들은 한국이 미국만 맹신하며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극렬히 비판하기도 했다. 이제 모자이크를 시작해 보자. 아부키르와 행주산성의 장면을 합치면 「세계 각국이 과거의 악연을 떨치고 새로운 동반자적 관계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소(小)결론이 나온다. 프랑스 집권당의 21세기 사회주의자 선언과 오마에 겐이치의 한국경제 비판을 합치면 「각 국은 나름의 갈 길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해관계가 엇갈리면 언제든지 등을 돌린다」는 또하나의 소(小)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어느 길이 올바른 길이며 누구와 손을 잡는 것이 유리할 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그렇지만 확실한 게 있다. 상황변화에 적절히 대처하고 남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확실히 청산하고 새로운 풍토와 체제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아직 뒤죽박죽이다. 한 쪽에서는 철저한 개혁을 외치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과거의 향수를 일으키려 애쓴다. 특히 재벌개혁과 박정희기념관 건립은 아무리 모자이크를 해도 잘 맞춰지지 않는다. 정부는 지금 재벌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정치개혁도 서두르고 있다. 그런 가운데 10·26 20주년을 계기로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위한 정부지원 문제가 다시 이슈로 부상됐다. 정치개혁과 재벌개혁의 원인제공자가 朴전대통령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朴전대통령이 경제성장에 기여한 공을 간과해서는 물론 안될 것이다. 그러나 지역갈등과 재벌비대화를 야기시킨 장본인이 朴전대통령이라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더욱이 그는 개혁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고 친일세력을 척결하지 못했다. 朴전대통령은 그 시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지 모른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볼 때 긍적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박통(朴統)」을 그리워할 때가 아니다. 정부는 朴전대통령 시절부터 내려온 고질(痼疾), 즉 권위주의 통치·지역차별·재벌비대화 등을 혁파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朴전대통령기념관 건립 지원에 대해 정부는 지역화합을 구실로 내세우지만 선거를 앞둔 얄팍한 처신이라는 시비만 불러올 뿐이다. 아부키르와 행주산성에서 보듯 역사적 화해는 당사자의 마음에서 우러나 하는 것이지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역사학자들의 요구처럼 역대 대통령 모두의 기록관을 짓는 것이 어떨까. 그 곳에는 「건국의 아버지」와 「굶주림을 몰아낸 구세주」도 있고, 「독재자」와 「철면피」들도 있을 것이다. 누구를 어떻게 감상할 지는 관람객의 자유다. 국민의 자유는 먼 데 있지 않다. 정부가 역사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을 때 진정한 자유가 보장된다. 행주산성에서의 「진실된」 악수과 박정희기념관 기공식에서의 「가식된」 포즈는 절대로 하나의 모자이크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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