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될 경우 세수도 영향을 받을까요.(기자)” “글쎄. 거기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재정경제부 고위관계자) 내년 초 한미 FTA 체결을 시작으로 경제통합이 본격화되지만 정부 부처들이 협상일정을 쫓아가기도 벅차 FTA 체결에 따른 중장기적인 영향 분석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정부가 FTA 체결을 위해 서두르고 있을 뿐 체계적인 연구와 분석을 토대로 한 전략수립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내년 FTA 관련 연구 예산이 한 푼 없다는 것도 정부의 안일한 대처를 보여준다. 개별 협상 타결에 급급할 경우 자칫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FTA가 엉뚱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FTA 중장기 전략 연구 없어=정부는 오는 2010년까지 15개국, 2020년 25개국, 2030년 50개국과 FTA 체결을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이럴 경우 동아시아 경제통합 실현이 더욱 가속화돼 우리 경제 전체에 미칠 영향력도 막대하다. 이 때문에 그동안 정부는 한미 FTA에 대한 연구를 별도의 용역을 줘 연구를 해왔다. 올 초까지만 해도 FTA 추진에 대한 각종 정책과 실무를 담당하기 위해 대외경제위원회 실무기획단 등 국책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연구를 수행했지만 막상 FTA 협상이 진행되면서 추가적인 작업이 없는 상태다. 문제는 그간의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FTA 체결이 세금이나 환율 등 국가재정 운용의 핵심요소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정부 주장대로라면 한미 FTA 체결로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가 늘어나고 고용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생길 경우 더 많은 세금을 거둘 것으로 기대되지만 재경부 세제실은 물론 기획예산처는 검증작업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세제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부수적인 내용 아니냐”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기획처 역시 2006~2011년 중장기 재정계획에서 FTA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향후 5년 동안 세입이 연간 7% 늘어날 것”이라는 다소 안일한 판단만 내리고 있다. 환율에 대한 영향은 외환당국도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만약 FTA 체결로 무역흑자가 늘어날 경우 원화환율은 하락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정부 생각과는 달리 외국인 투자 등 직접투자보다 투기성 금융자본의 공략이 가속화될 경우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자본 유출입 자유화로 고용을 늘리는 직접투자보다는 간접투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며 “미국의 투기성 금융자본이 더욱 극성을 부릴 경우 환율 변동성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미래 한국 위한 예산에 인색=내년도 각 부처 이색사업에 동북아역사재단 설립이나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등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의 예산은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씩 할당돼 있지만 FTA 연구예산은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FTA 체결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지만 국내에서 연구된 부분은 극히 미미하다”며 “아직 우리나라가 체결한 경험이 미미하다면 다른 체결 국가들의 경제효과라도 파악해야 되는데 총론만 있고 각론은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올해도 용역예산에서 부분적으로 필요한 수치만 만들어내는 데 급급했을 뿐 FTA 체결이 재정에 미치는 영향 등은 검토조차 못하고 있다. 관변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개별 국가와 FTA를 체결하느라 바빠 시스템에 대한 연구가 전혀 안돼 있다”며 “미국은 정해놓은 모델에 따라 협상에 임하는데 우리는 기본적인 ABC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씁쓸해 했다. 재경부의 한 실무자는 “직접 협상에 뛰어든 부처가 할 수 있는 일은 협상과정에서 겪은 노하우에 대해 백서를 만드는 정도”라며 “중장기적인 연구는 한미 FTA체결지원위원회 등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