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국가들은 원화 채권을 상당량 갖고 있어 동남아발 환란이 터지면 채권 시장을 통해 우리나라 자본시장에 위기가 빠르게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7일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7월 말을 기준으로 외국인이 가진 원화 채권은 102조9,700억원어치다. 전체 상장채권의 6.6% 규모다. 작년 말 100조3,600억원이던 외국인 채권 보유액은 6월 말 105조5,900억원으로 불어나는 등 상반기 내내 증가했다.
하지만 7월부터 외국인 보유액이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7월 5,600억원, 8월 2조6,200억원이 국내 채권시장에서 이탈한 것이다.
7월 투자국별 순유출액은 태국이 1조2,52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5,650억원), 말레이시아(2,960천억원), 중국(2,690억원)이 뒤를 이었다. 아시아 자금의 유출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아시아 외환시장 불안으로 태국, 말레이시아, 중국 등이 원화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빼고 있다”며 “한미 금리 차이가 축소되고 환율 측면의 손실도 커 미국 자금도 이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 국가 중앙은행은 2013년 미국의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충격 이후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부각된 원화 채권 보유 비중을 크게 늘렸다.
7월 말을 기준으로 태국(5조2,000억원), 말레이시아(4조1,000억원), 인도네시아(9,000억원) 세 나라가 가진 원화 채권 보유액이 외국인 채권 보유액의 10%가량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들 국가의 통화가치 하락은 외화 보유액 축소, 원화 채권 매도로 이어져 국내 채권시장 수급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의 원화 채권 잔고는 외화 보유액과 거의 같은 추세를 그려나가고 있다. 26일 기준 달러 대비 말레이시아 링깃, 태국 바트, 인도네시아 루피아 가치는 연초 대비 21.4%, 8.4%, 13.6%씩 떨어졌다. 같은 기간 중국 위안화와 원화는 달러 대비 3.3%, 7.9% 떨어지는 데 그쳤다.
이달 들어서도 외국인의 원화 채권 투자는 환율에 민감한 영향을 받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외국인의 국내 채권 순매수액(만기 도래 제외)은 이달 1일부터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하기 전날인 10일까지 1조6,072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위안화 평가절하가 단행된 11일부터 26일까지는 순매수액이 727억원으로 급감했다.
정의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순으로 원화 채권 자금 이탈 리스크가 큰 것으로 추정된다”며 “예상보다 빠른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추가적인 위안화 평가 절하에 따른 아시아 통화의 약세 심화 등 외부 충격이 발생하면 국내 채권 시장에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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