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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매월 신기록을 세우며 불어나는 가계부채를 정교하게 분석하기 위해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했지만 '반쪽짜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득 통계치가 결합하지 않은 탓이다.
가계부채는 총량으로 늘어는 것도 문제이지만 채무자의 상환능력이 있느냐 여부가 더 중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부채 규모와 함께 가처분소득도 통계적으로 분석해야 대책 마련의 실효성이 높아진다. 그럼에도 현재 어느 곳에서도 소득 부문과 가계부채를 종합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경제 최대 뇌관인 가계부채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므로 국세청이 관련 정보를 한은과 제한적 범위 내에서 공유하는 내용의 국세기본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처 간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것도 박근혜 정부의 중점 과제로 부처 간 칸막이를 풀자는 '정부 3.0'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계부채 DB는 지난해 10월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서 정희수 위원장이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가계부채 총량이 얼마인지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주문한 후 구축 작업이 시작됐다. 분석 결과는 기획재정부 주관으로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은 등이 참여하는 '가계부채관리협의체'의 주된 참고자료로 쓰인다. 지금까지 가계부채 분석은 매년 3월 통계청이 설문조사로 작성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토대로 이뤄졌다. 하지만 설문조사의 한계로 신뢰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응답자가 소득을 축소하고 부채는 부풀리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한은 DB는 신용정보업체 '나이스'로부터 100만명의 표본을 추출한 자료다. 하지만 이 DB로는 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20일 "나이스는 개인이 처음 대출을 받은 후 대출액 추이를 정교하게 추적하지만 소득은 어떻게 변하는지 추정만 하고 있어 정확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관계자도 "은행은 자영업자에게 대출해줄 때 신용카드 사용액 등으로 소득을 추정한다"며 "한은이 받는 자료가 그렇게 추정된 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정확한 소득 파악은 국세청이 키를 쥐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국세기본법상 조세정보 유출은 중대한 범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해명했다. 국세청은 국세기본법에 의해 통계청·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소수의 기관을 제외하고는 조세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통계청에 자료가 제공되기 시작한 것도 불과 6년밖에 안된다. 지난 2009년 국세정보를 재정경제부·통계청·한은 등에 제공하자는 법안이 추진됐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은 기관에 자료를 제공하면 혼란이 커질 수 있다며 통계청부터 제한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국세기본법에 따르면 '통계청장이 국가통계작성 목적으로 과세정보를 요구하는 경우 납세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고 일어나면 폭증하는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감안해 하루 빨리 정보공유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재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은 "국세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새어나가는 것"이라며 "한은이 보안대책을 확실히 한다는 전제하에 국세기본법 개정을 통해 정보가 공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도 "개인 소득정보는 국세정보 중 가장 민감한 사안"이라면서도 "가계부채 역시 우리 경제 전반에 걸친 심각한 문제이므로 심도 있고 신속한 논의에 따른 국세법 개정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교한 분석이 나와야 정부와 한은도 부채 억제를 위해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일지, 저성장에 대응하려 돈을 더 풀지 결단을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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