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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ㆍ폭력…바그다드 또다른 전쟁중
입력2003-04-14 00:00:00
수정
2003.04.14 00:00:00
13일 낮 바그다드의 하늘은 희뿌옇게 흐렸다. 포연과 석유 연기, 패전의 절망 속에 숨겨진 분노와 자괴감, 유혈낭자한 폭력과 무차별 약탈…. 기자가 요르단 국경을 거쳐 도착한 바그다드의 첫 풍경에선 전쟁 마무리의 평온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거리 곳곳에 묻어나고 있는 화약 냄새와 간간이 들려오는 총성은 함락 5일째를 맞은 바그다드가 여전히 전시의 혼란 상태에 있음을 보여줬다.
치안 확보에 나선 미군의 통제 범위는 서방 기자들의 집합소인 팔레스타인 호텔 주변과 시 외곽으로 통하는 주요 도로가 전부인 것 같았다. 그 밖의 지역에서는 재산을 뺏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사이의 치열한 생존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12일 오후 4시30분께 테코네 호텔 부근에서는 기자와 불과 50㎙ 떨어진 곳에서 AK_47로 보이는 소총을 든 시민들이 서로에게 총격을 가하며 차량 추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게릴라전을 펼치는 이라크 저항 세력과 미군의 전투도 끝나지 않았다. 이날 오후 6시께 기자가 머물고 있는 팔레스타인 호텔 바로 뒤편에서 30여분 넘게 야포와 기관총을 동원한 교전이 전개됐다. 포탄이 터질 때마다 호텔 로비의 두꺼운 유리 벽이 파르르 소리를 내며 떨렸다.
대다수 시내 상점과 거의 모든 공공 건물이 이성을 잃은 시민들에 의해 유린되고 있다. 대통령궁은 물론 바그다드 시립극장, 공군사령부, 무역부 등 거의 모든 국가 기관에서 방화로 인한 연기를 뚫고 가구, 집기 등 닥치는 대로 물건을 들고 나오는 시민들을 목격할 수 있다.
수백명의 시민은 국립박물관에까지 난입해 귀중한 문화재들을 훔쳐 달아났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바그다드 주재 외국 대사관들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대사관의 사무실은 난장판처럼 어지럽혀져 있었고 TV 등 전자제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대사관 2층과 3층 벽에는 직경 15㎝의 포탄 자국이 3개나 패여 있었다.
병원의 구급약이나 치료 기구까지 약탈 대상이 되는 바람에 바그다드 시내 병원 40여 곳 가운데 3곳만이 부분 진료를 하고 있다는 소식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날 현재 공습과 약탈의 대상이 되지 않은 공공시설은 미군이 보호 중인 석유부 등 석유관련 시설이 유일하다. 시내 하얏트 호텔에서 빈병과 카펫을 들고 나오던 10대 후반의 소년들은 “사담 고, 부시 다운”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날 오전 기자가 탄 취재 차량의 바그다드 시내 진입 과정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미군이 500m 간격으로 겹겹이 진을 치고 있는 바그다드 서부 고속도로에선 서방 기자들의 취재 차량만 통행이 허용됐다.
취재 차량도 검문소마다 내려 두 손을 들고 미군 탱크로 다가가 여권, 기자증 등을 일일이 검사 받은 뒤에야 통과할 수 있었다. 미군은 빠르게 접근하는 취재 차량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경고 사격을 가하기도 했다.
바그다드내 주요 도로 곳곳은 미군 탱크와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어 기자가 탄 취재 차량은 마치 미로를 헤매듯 되돌아서기를 반복하다 종종 교전이 벌어지는 만수르 지역을 정면 돌파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며칠 전 CNN 등을 통해 파르두스 광장에 있는 후세인 동상이 무너지는 모습이 방영됐으나 시내 곳곳에는 여전히 후세인 동상이 `반미 저항`을 독려하는 듯 매캐한 연기 속에 팔을 치켜들고 서 있다.
<김용식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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