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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인터뷰] 이지순 차기 한국경제학회장

공짜 의존 모럴해저드가 나라 망쳐… 자립정신 찾아야 경제 회복

출산·교육·취업 등 무상복지에 집착 자세 버려야

구조개혁·내수활성화 성공하면 4~5% 성장 저력

고용 유연하게 하되 비정규직 봉급 등 더 우대를



30년간 경제학을 강의해온 노(老)교수는 자전거를 탄다. 정년 퇴임을 한 달여 앞둔 지금도 혹한의 날씨 속에 자전거로 캠퍼스 곳곳을 누빈다. 노교수는 본인의 두 다리로 페달을 밟아야만 자전거의 두 바퀴가 굴러가듯 우리 경제 앞에 닥친 각종 난관도 '내 문제는 스스로 해결한다'는 '자립(自立)' 정신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음달부터 한국경제학회장을 맡게 된 이지순(사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자전거가 비치돼 있는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 교수는 "우리 경제는 한 번도 어렵지 않았던 적이 없었지만 항상 위기를 극복해온 저력이 있다"며 "잃어버린 자립정신을 되찾으면 가계도, 기업도, 경제도 살아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은 한국 경제를 되살릴 성장동력은 자립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립을 통해 가계소비가 깨어나고 기업활동이 활발해지면 자연스럽게 경제도 활기를 되찾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특히 무상복지 등 국가 시스템에만 의존하려는 국민들의 정서를 경계해야 할 우선 대상으로 꼽았다. 그는 "복지는 한 번 받기 시작하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가계부채 역시 국가가 도움을 주지 말고 빚을 진 사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책임을 지지 않고 '누군가의 도움에 의지하면 해결된다'는 모럴해저드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으며 우리 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경제, 일본식 저성장과 상황 달라

이 교수는 큰 선거가 없는 올해 정부의 경제정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세월호 참사 등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여파를 미쳤던 경제 외적 요인들이 점차 해소돼가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 교수는 "올해는 정부의 경제혁신3개년정책이 탄력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와 있다"며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복지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구조개혁과 내수 활성화 등에 포커스를 맞추면 4~5%의 성장을 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년간은 정치·사회적인 이유 등으로 경제정책을 제대로 펼칠 기회가 없었다"며 "정부가 중심을 잡고 경제정책을 펴고 기업에 긍정적인 신호가 전달돼 투자로 이어지면 경제는 제 궤도에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특히 국제유가의 하향 안정화 추세는 올해 우리 경제에 호기라고 분석했다. 최근 불거진 러시아 등 신흥국의 경기침체와 주력 제품의 수출감소 우려를 저유가로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면 중국경제는 소강 상태고 일본도 어렵다"며 "미국 경제가 그나마 유일하게 회복되고 있지만 앞으로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저유가 기조는 '빅 플러스'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우리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성장률과 금리가 낮아지는 '뉴노멀'이나 일본처럼 장기 저성장 기조에 빠진 상황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다만 우리 경제가 지닌 비효율성을 극복해야 한 단계 더 성장할 잠재력을 깨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편적 복지 비중 줄이고 선별적 복지로

이 교수는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비효율성으로 먼저 '무상'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상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국민들이 인식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우리 국민들은 근면·자조·자립정신을 잃어버리고 남의 돈으로 살아가는 것을 당연시하는 복지 의존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글로벌 시장이 저성장 기조로 들어선 지금 우리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최소한의 비용은 스스로 해결하는 '자립' 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과거 경제 성장기 때 우리 경제를 이끈 정신인 '근면·자조·자립'을 다시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출산도 육아도 보육도 교육도 취업도 결혼도 부모 봉양도 모두 국가가 책임지라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의 무상복지 등 보편적 복지가 재정부담을 줘 결국 우리 경제의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무상을 최소화하는 등 보편적 복지의 비중을 줄여 선별적 복지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빚내서 소비 유도한다고 내수 안살아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과도한 가계부채 이야기로 연결됐다. 이 교수는 정부의 확장재정 정책의 방향은 옳지만 일률적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를 푼 것은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계대출은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자산이나 소득에 맞춰 선별적·신축적으로 받아야 한다"며 "대출 받아 소비를 늘리는 방법으로는 더 이상 내수를 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외환위기 이전에는 부채로 소비를 한다는 생각은 금기시됐다"며 "소비를 위한 빚은 악성부채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분별 없는 부채 청산 정책의 최소화도 당부했다. 이 교수는 "빚을 진 사람들이 '내 책임'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며 "개인파산이나 신용회복이 남용되면 모럴해저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한국경제, 갈등으로 인한 손실 막대

한국사회의 고질병인 사회갈등 문제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 교수는 사회갈등을 소통과 설득으로 줄여야 경제정책도 힘을 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밀양 송전탑 문제도 충분히 대화를 했으면 강경 투쟁을 막을 수 있었다"며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사례는 리더십의 좋은 본보기"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이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러 현장에 갔을 때 처음에는 수모를 당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성이 유가족에 전달된 사례는 충분히 귀감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소통과 설득의 리더십은 국가 지도자와 정치인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국민들과 소통을 잘했다"며 "하지만 정작 대통령이 되고 나서 본인이 옳다고 생각되면 '무작정 따라 와라'라고 하는 불통 이미지가 각인된 점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기업 어려울때 해고할 수 있는 자유 줘야

정부가 올해 구조개혁의 핵심으로 꼽는 노동 문제에 대한 의견도 거침이 없었다.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화할 수 없다면 정규직의 노동 유연성은 높이되 비정규직의 처우를 상대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일 사업장, 동일 임금이면 고용이 유연한 비정규직을 더 대우해주는 것이 맞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없으니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것"이라며 "노조 등 기득권을 쥔 정규직의 이익을 위해서 남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업이 어려울 때 해고를 할 수 있는 고용의 자유를 주고 그 대신 비정규직의 월급을 많이 올리고 보험혜택을 많이 주는 구조로 가야 한다"며 "같은 조건에 같은 노동을 한다면 비정규직을 더 대우해줘 정규직에 역차별을 줘야 고용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 평등기조 버리고 산학협력 방점을

모두가 대학을 가는 현행 교육제도도 손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모든 국민이 대학에 가서 한 번에 인생을 결정하려는 현재 교육 시스템은 위험하다"며 "중·고등학교 때 학생들의 진로를 선별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결국 교육은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산학협력으로 가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모두가 대학 나왔다고 높은 임금을 바라고 중소기업에 가지 않겠다는 것은 문제"라며 "연구 중심 대학 10여개를 제외하고 지역 전문대 등을 활성화하는 등 교육은 '실사구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국 젊은이 한 사람이 앞으로 두 사람, 세 사람 몫을 할 수 있게 교육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총수, 대가 치렀다면 봉사 기회를

최근 대한항공 '회항' 사건으로 불거진 재벌 2·3세 경영인들에 대한 소신 발언도 이어졌다. 선대가 이뤄놓은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으면 사회적으로 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소리다. 이 교수는 "그 기업이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큰 문제"라며 "대기업 오너 2세·3세들은 사실 특혜를 받은 것이기 때문에 받은 만큼 더 성실하고 겸손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혜택을 받은 만큼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경영은 능력이 될 때만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기업인 가석방 문제는 신중하게 고려하되 편견은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하되 대기업이라고 또 다른 잣대로 평가해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대기업 총수라고 해서 특별히 잘해줄 필요도 없지만 특별히 못살게 굴어도 안 된다"며 "특혜가 아니라 다른 죄인들과 비교해서 충분한 대가를 치렀다면 밖에 나와서 국민 경제에 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맞는 일"이라고 전달했다. 그는 이어 "실수할 수 있지만 마녀사냥 식으로 기업 총수들을 묶어두는 것보다는 나와서 경영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성공적 통일준비 위해 국민의식 바꿔야

이 교수는 통일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당장 준비해야 할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성공적인 통일을 위해 무엇보다 대국민 설득과 국민들의 의식전환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통일 이후 북한 주민은 1인당 소득이 1,000달러 수준인 일종의 난민"이라며 "당장 우리가 먹여 살리기 위해 부담할 비용, 북한을 재건하기 위한 비용은 10년·20년 계획을 세워 중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통일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며 "국민들에게 통일 준비로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할 수 있다는 설득을 지금부터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주민과의 사회갈등을 줄이기 위해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금도 지역감정으로 사회갈등과 분열이 있는데 통일이 되면 북한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람, 2등 국민으로 인식될 것"이라며 "통일을 대비해 국민들에게 북한과 북한 주민에 대한 이해를 높여 동떨어진 민족 동질성을 회복해야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재건 돕자" 1952년 설립… 60여년 정책 조언 역할

■ 한국경제학회는
정운찬·박승·하성근 역대회장 역임
교수·연구원 등 회원 4,500명 달해


이지순 교수는 정년퇴임을 하는 2월부터 한국경제학회 회장으로 활동한다. 비록 강의실에서 후학들을 만나는 시간은 줄어들지만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학회 활동에 온 힘과 열정을 쏟을 생각이다.

한국경제학회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1월 전쟁 이후 한국 경제의 재건을 위한 토양을 마련하자는 뜻을 모은 경제학자들이 모여 부산에서 창립됐다. 이후 60년여 넘게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조언과 이론적 배경 등을 제공하며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경제학회 회원은 경제학 관련 분야의 대학교원, 경제학 박사학위 소지자, 경제학 관련 각종 연구기관의 연구원 등 약 4,500명에 달한다. 국내 경제학 연구자는 대부분 경제학 연구학회에 속해 있을 정도다. 국내 대표 경제학자이자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 서울대 명예교수(36대)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29대), 현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인 하성근 연세대학교 교수(41대)도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이 교수는 학회의 45대 회장으로 임기를 시작한다. 이 교수는 한국경제학회가 경제학 연구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게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대외 활동이 많았던 한국경제학회를 공부하는 회원들을 위한 학회로 만들고 싶다"며 "회원들이 여는 공부 그룹이 있으면 지원해주고 학술 세미나 등을 지원해 경제학 공부에 집중하는 환경을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 경제의 방향과 정책에 대한 의견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많은 주제를 가지고 얘기하기보다는 연간 4회 정도, 분기별로 한국 경제에서 정말 필요한 주제의 컨퍼런스를 통해 해법을 제시할 것"이라며 "올해는 성장 잠재력과 사회적 불평등, 경제 효율성 증대, 통일과 남북 문제 등 네 가지 큰 주제로 준비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약력 △1949년 충북 음성 △1972년 서울대 상학과 졸업△1984년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1983~1985년 브라운대 조교수 △1985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2004~2006년 삼성경제연구소 자문위원 △2007~2009년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장 △2014년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2015년 한국경제학회장(내정)

대담=김정곤 경제부 차장 mckids@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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