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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4대. 지난 2010년 북극을 통해 아시아와 유럽 사이를 오간 선박의 수다. 러시아 정부가 까다로웠다기보다는 단단하게 언 빙하와 영하 20도의 기온 탓에 섣불리 북극 항로에 진입하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북극을 통과해 유럽과 극동 아시아를 잇는 북극항로는 19세기 말 이미 인류가 탐험에 성공했지만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곳이었다.
그런 북극항로를 타고 우리나라 선사(船社) 최초로 현대글로비스가 화물운송에 나섰다. 15일 러시아 우스트루가항을 출발한 내빙선(耐氷船)은 35일간 항해를 거쳐 광양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현재 북극항로를 헤쳐가고 있는 이 배에 탑승한 현대글로비스의 이승헌 수석 항해사(30ㆍ사진)가 현지 분위기를 서울경제신문에 전해왔다. 그의 항해사 경력은 5년 반 정도로 길지 않지만 그동안 한국의 선박 운항사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유럽ㆍ아프리카ㆍ북남미의 바다를 거쳐온 끝에 북극과 마주하게 됐다.
16일 이 항해사는 "국적선사의 북극항로 운항이 활성화된다는 말은 그만큼 북극항로를 운항하는 선박이 많아진다는 뜻으로 북극의 청정환경 보호의 필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시범운항에 참여하며 북극항로를 경제적으로 이용하되 향후 환경적 측면도 고려해 지속가능한 북극항로 이용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북극 항로 운항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북극해 운항 절차와 노하우를 습득하기 위해 승무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 항해사는 35일 항해기간 북극 항로를 지나는 데 알아야 할 절차와 내빙선에 탑재된 방한 장치ㆍ통신장비, 북극 기상과 빙하 예보 등을 활용하는 법 등을 익히게 된다고 전했다.
그는 "북극은 아직까지 다수의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곳이라 걱정이 앞서기는 하지만 반대로 이번 기회가 아니면 평생 가보지 못할 곳"이라며 "설렘과 도전의식이 생긴다"고 밝혔다.
이번 시범운항은 7월 발표된 범정부 차원의 '북극 종합정책 추진계획'의 일환이기도 하다. 정부와 해운업계 등은 이번 시범운항을 거쳐 북극항로 진출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북극 항로는 최근 수년 사이 전세계 해운ㆍ자원개발 업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한발 앞선 지난해 북극항로 시범 운항을 마쳤고 지난달에는 사상 처음으로 북극 항로를 거쳐 유럽에 도착하는 상업용 화물선 '융성(永盛)'호를 띄웠다. 캐나다의 에너지 기업인 MGM은 북극 곳곳에 개발 광구를 갖고 석유ㆍ가스 개발에 한창이다.
각국이 북극 선점을 노리는 이유는 우선 운송 비용 절감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출발하는 선박이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기존 항로 대신 북극항로를 택할 경우 운항 시간이 열흘 이상 단축된다.
북극에 매장된 대규모 에너지 자원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ㆍ캐나다가 탐사 중인 지역에서만 120억배럴의 석유와 4.5조㎥의 천연가스 매장량이 확인됐다.
이 때문에 지난해 46대에 이어 올 들어 현재까지만 무려 370대가 골든 워터웨이를 지났다. 이 숫자는 앞으로도 점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아직 북극항로를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은 해빙기(7~10월)뿐, 그 외의 기간에는 쇄빙선이 동행해 얼음을 부수며 전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쇄빙선ㆍ내빙선을 본격적으로 건조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서진희 해양수산부 해운정책과 팀장은 "아직 국내 해운업체 등의 수요가 적어 당분간 외국 업체의 배를 빌려 쓸 것으로 보인다"며 "2030년쯤 북극 항로가 좀더 활성화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자원 개발의 경우 워낙 투자 규모가 커 민간 기업이 독자적으로는 나서기가 힘들다. 대우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세계적인 메이저 기업들이 북극으로 진출하는 단계"라며 "초기 탐사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정부 지원이 있어야 국내 기업들도 북극 진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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