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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지켜냈지만 주요 민감품목이 중장기 관세철폐로 잡힌 것이 아쉽다. 특히 축산농가의 피해가 클 것으로 보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농산물 가격 하락 등 긍정적 효과가 적지않으나 쇠고기ㆍ감귤ㆍ돼지고기 등 주요 민감품목이 장기 관세철폐로 정해짐에 따라 우려했던 대로 적잖은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당장 쇠고기 값은 뼈까지 포함한 미산 쇠고기 수입이 허용되면 암수와 수소(600㎏) 평균 가격이 각각 503만원ㆍ408만원으로 지난해보다 5.1%씩 하락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태다. 감귤이 주요 수입원인 제주도도 지역산업이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농림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당초 우려했던 만큼의 피해는 없었고 한미 FTA도 이와 같을 수 있다”며 “이번 협상 결과를 토대로 종전 농축산 피해 대책을 전면 재검토, 새로운 지원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민감품목 관세 10년 내 철폐시 연 8,700억원 피해=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쇠고기ㆍ감귤 등 주요 농산물 25개 품목에서 관세가 즉시 철폐되면 연간 1조8,000억원가량의 생산감소가 뒤따를 것으로 분석됐다. 품목별 양허방식이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주요 26개 품목에 대해 10년 내 관세를 제로로 가정할 경우에는 한해 8,700억원 정도 생산액 차질이 나타날 것으로 연구원은 예상하고 있다. 이는 국내 연간 총 농업 생산액 33조3,760억원의 2.6%에 해당하는 규모다. 품목별로는 쇠고기ㆍ돼지고기ㆍ대두(콩)ㆍ보리ㆍ닭고기ㆍ사과ㆍ포도ㆍ감귤ㆍ낙농품ㆍ배 등의 순서로 피해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다행히 FTA 최종 협상 결과 쇠고기와 사과ㆍ배 등의 관세철폐 기간이 10년보다 긴 15~20년으로 잡혔고 우리 측의 집요한 요구로 계절관세ㆍ세이프가드(SG) 등 개방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도 상당 부분 삽입돼 실제 피해는 이 추정치보다 적을 것으로 관측된다. ◇피해 큰 쇠고기 등 축산농가는=쇠고기와 돼지고기 등 축산은 이번 한미 FTA로 가장 큰 타격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현행 40%인 쇠고기 관세가 10년 동안 단계적으로 낮아질 경우 연간 국내 쇠고기 생산 감소액은 2,214억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 2004년 한우 쇠고기 생산액 2조9,000억원의 거의 10%에 해당한다. 미국의 ‘광우병 위험 통제’ 등급이 확정된 뒤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이 재개되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다. 농촌경제연구원은 OIE 판정 이후 오는 7월부터 갈비 등 뼈까지 모두 수입되면 올해 당장 한우 암소와 수소(600㎏) 평균 가격이 각각 503만원ㆍ408만원으로 지난해보다 5.1%씩 하락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암ㆍ수 송아지 값 하락폭은 더욱 커 각각 9.6%, 20.9%나 떨어질 전망이다. 현재 50%로 돼 있는 오렌지 관세를 10년 안에 없애면 한해 370억원 정도 생산액이 감소하며 사과도(현재 45% 관세) 연간 610억원의 생산감소를 감수해야 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농민 지원대책 다시 내놓겠다=한편 이번 한미 FTA 협상에서 우리는 미측으로부터 가공식품에 대한 관세 인하를 얻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에 따른 수출증대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은 대부분의 품목에 대해 영세율을 적용하고 있고 김치(6.4%), 라면(6.4%), 감자(8%) 등 가공품에 대한 관세율도 비교적 낮아 관세인하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농림부에서는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불만족스럽다는 분위기도 나오고 있다. 농림부 다른 관계자는 “자동차를 얻기 위해 농업을 너무 많이 내준 것 아니냐”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농림부는 한미 FTA가 종전 칠레ㆍ아세안 자유무역협정보다 큰 피해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고 기획예산처ㆍ재정경제부 등과 함께 지원 예산을 대폭 늘리는 등 다각적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종배기자 ljb@sed.co.kr ● 농축산물 3분의1 즉시 관세철폐
농업개방규모 사상최대
칠레·아세안과 체결때
예외품목 대부분 개방 농업분과의 경우 우리가 체결한 역대 FTA(자유무역협정)에서 가장 큰 시장 개방 규모를 기록하게 됐다. 즉시 관세철폐 품목 수나 민감품목의 단계적 관세인하 등 여러 면에서 한미 FTA는 무역 자유화에 거의 다가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선 한ㆍ칠레 FTA에서 양측은 쌀, 사과, 배 등은 시장개방에서 제외키로 했다. 포도에 대해서는 계절관세를 적용하고, 고추ㆍ마늘ㆍ양파ㆍ분유 등은 DDA(도하개발어젠다) 협상이종료 된 이후에 다시 관세철폐 계획을 논의키로 했다. 아울러 쇠고기, 닭고기 등에 대해서도 일단 무관세 쿼터를 제공하는 대신 관세 철폐는 DDA 협상이 종료된 이후에 검토키로 합의했다. 한ㆍ칠레 FTA는 또 즉시 관세철폐 품목도 교역 가능성이 적거나 영향이 미미한 품목으로 한정했다. 당류, 면류, 초콜렛, 동물성 유지 등 국내 농업 피해를 최소화 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국회 비준을 기다리고 있는 한ㆍ아세안 FTA 협상에서도 우리는 휴대폰ㆍ자동차에 대한 요구를 줄이면서 농업분야에서는 많은 것을 지켜냈다. 쌀, 고추, 마늘, 양파, 쇠고기(냉동), 돼지고기(냉동), 닭고기, 감귤 등 35개 우리 주요 품목은 관세 인하 대상에서 아예 제외했다. 또 치즈, 사과, 배, 오렌지 등 5개 품목은 2016년까지 관세를 50%포인트 인하키로 감축했으나 현재도 이들 품목의 관세가 50% 이하이다 보니 실질적 관세인하 효과는 거의 없도록 합의했다. 대신 맥주보리, 겉보리, 쌀보리, 옥수수, 오렌지 주스 등 국내에서 거의 생산되지 않은 23개 품목에 대해서도 2015년까지 현행 관세를 유지하다 2016년부터 50%를 내리기로 합의했다. 반면 이번 한미 FTA 농업협상에서 우리는 총 1,531개 농축산물 가운데 즉시 관세철폐 품목만 537개나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구마, 자몽, 레몬, 토마토, 상추, 수박, 말, 송이버섯, 고사리 등이 그 대상이다. 아울러 한미 FTA에서는 칠레와 아세안에서 시장 개방 예외로 우리가 지켜 냈던 주요 민감품목에 대해서도 사실상 문호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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