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패닉 한방에 불 껐다. 원화가치 발표 이후 177원 급등 지난 2008년 10월30일 새벽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을 발표하면서 살얼음판을 걷던 국내 금융시장은 급속도로 안정됐다.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던 금융시장은 메가톤급 호재로 받아들였고 주가ㆍ환율ㆍ채권값이 동반 급등하는 ‘트리플 초강세’를 연출했다. 발표 당일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77원이나 폭락(원화가치 상승)한 1,25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하락폭은 1997년 12월26일의 338원 이후 10년10개월 만에 최대치였다. 코스피지수도 115.75 포인트(상승률 11.95%)나 폭등했다. 사상 최대의 상승률이었다. 환율시장의 안정으로 11월 금리의 추가 인하 전망이 확산되면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4.39%로 0.15%포인트 떨어졌다. 당시 외국인 투자가들이 한국 증시에서 탈출하면서 환율이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은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해 7~9월 경상수지 적자가 39억8,100만달러에 달한데다 외환당국이 환율방어에 나서면서 외환보유액은 3월 2,642억4,000만달러에서 11월 2,005억달러로 637억4,000만달러나 급감했다. 당시 외환보유액 2,000억달러는 국가부도 우려를 막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인식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발표되면서 시장은 300억달러의 외화자금을 확보했다는 차원을 넘어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이 한국경제에 방어막을 쳤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또 미국이 한국의 외채지불능력을 보증했다는 점에서 국가신인도가 높아지는 효과도 거뒀다. 당시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주한미군의 숫자는 4,000여명에 불과하지만 그 자체로 국가안보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폭풍이 몰아치는데 우리나라만 우산 하나 더 받아온 것과 비슷하다”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지적처럼 한계도 명확했다. 당시 국가부도 가능성 등 최악의 우려는 해소됐지만 글로벌 신용경색의 여파로 실물경제가 침체되면서 중소기업 유동성 위기, 수출둔화와 내수침체 등의 악재가 속속 현실화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원ㆍ달러 환율은 그해 11월20일 1,497원을 기록하며 통화스와프 체결 이전 수준보다 올라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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