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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ㆍ불공정거래 조사 늦춘다] 시장불안 증폭에 ‘先 경제살리기’
입력2003-03-12 00:00:00
수정
2003.03.12 00:00:00
정승량 기자
정부가 대기업 등에 대한 조사를 무기 연기한 것은 본격적인 `경제살리기`에 나섰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우리경제의 상황이 급전직하해 각종 조사를 감당할 만큼 시장여건이 여유롭지 못하다는 절박한 인식이 깔려 있다. 이날 고건 총리가 경제5단체장과의 간담회에서 기업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일제조사 및 세무조사를 일시적으로 유보하겠다고 밝힌 점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각종 조사를 연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점은 일견 의외로 볼 수도 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통과의례격으로 세무조사, 불공정거래 조사가 실시됐던 과거와도 다르다. 특히 강력한 재벌개혁 의지를 갖고 있는 새 정부가 일단 유보하기로 한 점은 그만큼 경제에 우선을 두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왜 유예하기로 했나=고 총리의 발언과 정부 방침은 일단 `개혁`이라는 이상보다는 `경제회생이 최우선`이라는 현실을 선택한 셈이다. `설마`하던 우려가 현실화하면서 경제여건이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한 시장질서를 바로잡아야 하지만, 시장이 위축되고 무너지면 개혁은 의미없는 것이 된다. 이제나 저제나 풀릴 것 같던 이라크와 북핵사태가 계속 꼬여가면서 주가는 하루도 쉼없이 곤두박질하고 있고, 물가는 다락같이 오르며, 저금리를 구가하던 채권시장마저 SK글로벌의 분식회계사태로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다. 불안심리가 증폭되면서 기업이나 개인할 것 없이 달러사재기에 나서고 있고, 기업들은 아예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단 개혁을 우려한 불안심리는 어느 정도 누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상황이 진전되면 개혁프로그램은 계속 진행한다는 게 정부의 확고한 의지다.
◇경제살리기 본격 나선다=경제살리기를 위한 정부의 행보는 계속될 예정이다. 기업인의 사기를 살리고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이 잇따라 선보인다. 여기에는 기업은 물론 금융시장 분위기 개선, 국가이미지 고양 등 국내외를 망라하는 전방위적 방안이 포함돼 있다.
우선 오는 21일 경제장관회의에서 규제완화를 통한 투자활성화대책이 확정될 예정이다. 동부전자의 음성공장증설과 100억달러에 달하는 LG필립스의 파주공장건설, 남해 수자원보호구역 선별적 해제, 경유승용차 허용 등이 핵심내용이다. 이는 약16조원에 달하는 신규투자를 유발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환경규제와 수도권 규제에 묶인 투자를 풀어주는 게 주내용으로 부처간 이견조율이 한창이다.
주식투자자를 위한 장기 수요확충 방안, 상반기 재정집행 확대도 경기진작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상반기 예산집행규모를 2조5,000억원으로 늘린 정부는 필요할 경우 건전재정을 해치는 않는 범위 내에서 모든 재원을 동원할 계획이다. 재정에서 추가로 나올 수 있는 자금은 약 2조5,000억원에 달한다. 최대 5조원의 재정투자가 가시권에 있는 셈이다. 정부는 특히 이달 말까지 개혁프로그램의 일정, 경제정책 방향에 관한 분명한 일정을 제시해 막연한 불안감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외국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해외 국가설명회(IR)도 이달말부터 본격화한다.
◇재계도 투자에 나서야=문제는 정부의 이 같은 노력이 일방적인 메아리에 그칠 수 있다는 점. 투자에 나서야 할 재계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효과가 반감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를 재계와의 관계정립을 위해 13일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비서진을 포함하는 경제팀과 경제 5단체장 간담회를 가질 계획이다. 이 자리에서 재계의 화답이 자연스럽게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삼성그룹이 정부의 개혁조치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후여서 어느 때보다 재계의 참여분위기도 고조되고 있다.
◇개혁방침은 변함없다=일단 경제살리기에 우선순위가 주어졌지만 각종 개혁조치도 변함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이번 정부의 조치가 탈세나 기업들의 부당내부거래를 무조건 눈감아주겠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급한김에 세무조사ㆍ부당내부거래 조사 유보 방침을 밝혔지만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동안의 노무현식 개혁을 읽어나가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근영 금감위원장과 김진표 부총리의 SK그룹 수사 외압설에 대해 12일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관련 장관이라면 우려를 갖고 관심을 표명하는 게 당연하다`며 `다른 장관들도 이처럼 적극적으로 대처하다`주문했다. 내용이 좋다면 굳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뜻이다. 재벌관련 정책도 성과가 좋다면 명분에도 사로잡히지 않겠다는 의지가 이번 세무조사 유예 등에도 스며 있다. 이날 업무보고를 가졌던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은 “경제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라는 대통령의 의지가 확실하다”고 전했다.
<권홍우,정승량기자 s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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