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별 보고 출근해서 새벽 별 보며 퇴근하는 게 일상입니다. 요즘은 주말도 없어요."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 소속 한 개발진의 말이다. 비메모리 사업을 책임진 시스템LSI는 이처럼 스마트폰 커스텀코어, 통합칩 개발 등 반도체 설계 역량 강화 프로젝트에 밤낮없이 매달리고 있다.
이를 진두지휘하는 김기남 반도체 총괄 사장은 부서별 야근현황까지 챙겨가며 직원들을 독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부 실적향상을 넘어 세계 최정상 반도체 설계역량을 갖추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관련 업계는 후발주자인 삼성전자가 인텔·퀄컴 등 경쟁사를 스스로의 힘만으로 따라잡기는 어렵다고 본다. 경쟁력 있는 반도체 설계 업체(팹리스)를 인수해 모바일·서버용 반도체는 물론 사물인터넷(IoT) 시대에 대비한 반도체 설계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국내외 일각에서는 심각한 부진에 빠진 세계 3위 팹리스인 미국의 AMD를 삼성이 사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AMD는 한때 PC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 40% 가까운 점유율로 인텔을 위협했다.
하지만 지금은 신제품의 연이은 실패와 자금 부족으로 좀처럼 재기의 발판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CPU 점유율 18%, 2억달러가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한 이 업체는 올 초 주요 경영진까지 물갈이한 형편이다.
이런 가운데 60조원이 넘는 현금다발을 쥔 삼성전자가 정상급 반도체 설계역량을 지닌 AMD를 사들인다면 양사 모두에 윈윈이라는 주장이 많다.
특히 삼성이 갈수록 인수합병(M&A)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는데다 양사가 차세대 반도체 개발 협력을 강화하고 있어 M&A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AMD가 차기 신제품 생산을 대만의 TSMC 대신 삼성전자·글로벌파운드리 연합에 맡길 것이라는 관측도 끊임없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은 CPU와 그래픽용 반도체(GPU)에서 서버용 반도체를 아우르는 AMD의 설계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모바일뿐 아니라 서버·IoT 등으로 비메모리 반도체 제품을 다변화하려는 삼성전자에 결정적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시스템LSI 사업부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나 카메라센서(CIS) 같은 스마트 기기 부품 위주로 편성돼 있다.
더욱이 삼성의 AMD 인수 가능성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출신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삼성전자 위기론이 불거지던 2007년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AMD 인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 바 있다. 2012년에도 삼성·AMD M&A설이 미국 증권가에 돌면서 AMD 주가가 깜짝 급등하기도 했다. 물론 삼성전자가 AMD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징후는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다. 삼성전자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까지 (AMD 인수와 관련해) 논의된 사항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중국 반도체 업체 BLX가 AMD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는 루머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AMD의 시가총액이 2조원대가 넘는데다 이미 엔지니어 이탈도 많아 삼성이 무리한 M&A 대신 AMD의 고급 인재 영입에 치중할 가능성도 높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2012년에도 AMD 고위 엔지니어였던 마이클 고다드 부사장과 팻 패틀러 부사장을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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