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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금 활용 국부유출 막고 차등의결권·황금주 도입을"

■ 무분별 해외자본 공격 차단하라

영향력 큰 국민연금으로 적대적 M&A 차단

해외엔 없는 주주 의결권 3%제한 규정 없애고

1株에 1개 의결권 부여하는 상법 개정 필요도

'SK 사태'의 장본인인 소버린은 SK글로벌 분식회계가 터진 직후인 지난 2003년 4월 SK 주식 14.99%를 집중 매입한 뒤 경영권을 위협했다. 소버린은 2005년 7월 보유주식 전부를 9,326억원에 팔아치웠다. 2년여 만에 소버린은 매매차익과 배당금, 환차익으로 1조원에 육박하는 9,459억원의 이익을 남겼다.

대표적인 국부유출 사건이었던 셈이다.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삼성물산 공격도 패턴은 비슷하다. 투자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지만 삼성물산이 가지고 있는 계열사 주식을 현물배당하라고 요구한 점과 과거 투자내역을 보면 엘리엇은 전형적인 행동주의 펀드이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연기금을 활용해 국부유출을 막고 이번 기회에 경영권 방어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SK 사태'가 터졌을 때나 지금이나 경영권 방어체계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구체적으로 상법 개정을 포함해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이나 차등의결권제도·황금주제도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기금 활용해 국부유출 막아야=현재 삼성물산의 1대 주주는 지분 9.98%를 보유한 국민연금이다. 단일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이번 합병안의 성사 여부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이 해외 투기세력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무산시키는 역할을 일정 부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부가 밖으로 새나가는 것을 막고 중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국민의 자산을 불리는 게 연기금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특히 엘리엇의 삼성물산 공격 같은 문제는 단기적으로 시장 안에서 푸는 게 합리적이고 빠르다.

재계의 관계자는 "해외 투기펀드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국내 증시의 큰손인 연기금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며 "그래야 국부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국민연금은 국내 주요 기업의 1대 주주이거나 주요 주주로 올라 있다. 국내 1·2위 기업인 삼성전자의 지분 7.58%와 현대자동차의 주식 7.22%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주요 상장사의 경우 국민연금이 대주주다.

물론 국민연금의 투자시 제1목표는 수익률과 주주가치다.



주주가치는 그 시점을 어떻게 잡느냐가 관건이다. 1년 이하 단기로 볼 것이냐 중장기로 볼 것이냐에 따라 다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대비용 자산을 운용한다는 점에서 장기투자로 운용해야 한다는 게 금융계의 시각이다.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이 10일 "장기투자자라면 진정한 주주가치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각에서는 국수주의적 발상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이는 글로벌 시장의 냉혹함을 모르는 주장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IMF 때 미국을 포함한 서구 국가들은 우리나라에 고금리와 가혹한 구조조정을 요구했지만 반대로 2008년 자신들의 국가에서 같은 문제가 터지니 무제한으로 돈을 풀었다"며 "핵심 기업에 투기세력의 공격이 있거나 해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있을 때 과연 미국 정부가 손 놓고 있겠느냐"고 말했다.

◇상법 개정 포함해 포이즌필·차등의결권제도 등 도입 검토해야=재계에서는 의결권 제한규정 같은 일부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행 상법은 감사나 감사위원 선임, 집중투표 배제시 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있으나 이런 규제는 해외 입법례가 없는 제도로 주식회사의 근간인 자본 다수결 원칙을 침해하고 있다"며 "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의결권 제한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외에는 있는 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제도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먼저 포이즌필은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면 충분히 도입할 만하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포이즌필은 적대적 M&A 상황이 발생하면 주주들이 실제 가격보다 상당히 할인된 가격으로 신주를 취득해 회사의 자본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며 "포이즌필을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경영권 방어가 아니라 경영진의 자리 보전을 위해 사용한 경우 법원에서 적법성 판단을 내려주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식 종류별로 의결권 수에 차등을 두는 차등의결권제도 도입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현행 상법 규정으로는 주주 평등의 원칙에 따라 1주에 1개의 의결권만을 부여하고 있다. 대주주 입장에서는 보통주의 몇 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경영권 방어에 유리하다.

황금주제도도 우리나라에는 없는 경영권 방어제도다. 황금주제도는 지배주주에게 M&A 같은 주요 사안을 무산시킬 수 있는 거부권을 주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영국에서 시작된 황금주는 합병을 거부할 수 있는 특별권한을 주는 것"이라며 "미국·일본과 같은 주요 국가들은 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주식 발행을 허용하고 있는데다 핵심 기간산업 업체의 인수합병은 사전에 규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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