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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민의 정전 대처
입력2003-08-19 00:00:00
수정
2003.08.19 00:00:00
14일 뉴욕 증시가 마감한 뒤인 오후 4시 10분. 갑자기 전기가 나가면서 사무실의 전원이 나갔다. 컴퓨터와 케이블 TV, 전등이 꺼지고 주변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날씨가 더워져 에어컨을 너무 써서 건물 전원이 나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휴대전화도 끊기고, 전철도 섰다. 이상해서 옆 건물을 들여다보니 그곳도 정전이었다. 건너편 맨해튼에서는 정체모를 검은 연기가 솟았다. 순간 사람들은 테러를 연상했다. 며칠전 알카에다 소속으로 추정되는 영국인이 휴대용 미사일을 미국에 반입하려다 발각된 적이 있었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되는 대정전 사태는 각자에게 이렇게 시작됐다. 사태의 진상을 확인한 것은 자동차 시동을 걸어 라디오를 들었을 때 였다. 나이애가라 폭포 근처 송전소에서 원인 모를 사고가 나 미국과 캐나다 동부 8개 주에 전기 공급이 중단됐다는 뉴스였다. 교통신호가 꺼져 뉴욕시 전체가 지옥으로 변했고, 에어컨 가동이 끊어졌다. 일부 다리와 터널을 통한 맨해튼 진입이 통제되고, 맨해튼에 볼일 보던 사람들이 떼를 지어 퀸스보로 다리를 건너왔다. 2년전 9ㆍ11 테러때와 똑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다행스런 점은 뉴요커들이 아주 질서 정연하게 비상상황을 대처했다는 점이었다. 조지 파타키 뉴욕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진두지휘했다.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사거리마다 나와 교통을 정리했고, 골목길에는 서로 양보운전을 했다. 약간의 약탈이 있었다고는 하나, 지난 77년 정전때 브롱스와 브루클린에서만 473개 점포가 약탈당하고, 961명의 도둑이 체포된 것과 비교하면 평일 수준의 범죄 상황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뉴욕시의 평가다.
돌발적인 정전사태를 겪으면서 슈퍼파워를 자랑하던 미국은 자존심이 상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년전 테러를 겪었던 뉴욕시는 차분하게 대처한 시민들과 함께 강한 자부심을 확인했다.
이번 사건은 인간에 의한 재앙이며, 문명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그 도전도 커진다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예다. 작가 에드워드 테너씨는 “전기 안전장치가 대규모 재앙을 확산시키는 사회에 살고 있다”며, “다음 사고는 더 대규모로 발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문제는 인재 발생을 최소화하는 것이며, 사고가 불가피하다면 그에 대한 만반의 대비를 하는 것이 문명인들의 할 일이라 하겠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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