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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에두고온 핏덩이 정말 만나나"

"北에두고온 핏덩이 정말 만나나" 3차 방문단 후보 김영광 할아버지 설레는 설맞이 "6ㆍ25때 아내와 태어난지 얼마 안된 막내 아들까지 남겨놓고 혼자 남으로 내려와 평생 가슴에 한이 맺혔어요. 이제 이들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올해의 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북측에 통보될 제3차 이산가족 교환방문단 후보자 20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지난 19일 확정된 김영광(86ㆍ서울 성북구 삼선5동) 할아버지는 누구보다도 뜻 깊은 설날을 맞고 있다. 그동안 명절때만 되면 북에 두고 온 아내와 네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눈물로 지샌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 때마다 가슴속의 기억들을 지우려 애썼다. 가까운 곳에 두고도 갈 수 없다는 현실이 김씨의 마음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두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을 TV로 지켜보면서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커졌다. 김 할아버지도 지난해 두번 모두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탈락하는 아픔을 맛봤었다. 하지만 이번 3차 상봉에서는 운 좋게도 후보자 200명에 김 할아버지의 이름도 올랐다. 물론 이 명단이 북에 통보돼 가족 확인을 거쳐 최종 방북단으로 확정되기 까지는 아직 관문이 남아 있지만 나이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꼭 되리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지금도 50년전의 상황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다. 그는 당시 서른두살인 아내와 아홉살, 여섯살난 두 딸과 세살된 아들 그리고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들 이렇게 다섯 식구를 거느리고 평남 강서군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은 이들을 하루아침에 이산가족으로 만들어 놓았다. 1.4후퇴 과정에서 고향부근에서 갑자기 전투가 벌어지는 바람에 3일만 피신해 있자며 친구들과 대동강을 건넌 것이 가족들과 생이별의 시작이었다. 그 길로 서울에 온 김씨는 미군 식당과 평택비행장 등에서 3~4년간 일을 하다 친구들과 함께 다시 서울로 올라와 생선장사 등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지냈다. 처음에는 '곧 고향 갈 날이 오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지냈지만 10년이 가고 20년이 흘러도 상황은 나아지기는 커녕 점점 나빠졌다. '이대로 영영 못만나고 마는 것인가' 김씨는 그래서 의도적으로 고향에 대한 기억을 마음속에서 지우고 지냈다. 다른 실향민들이 명절때면 자주 가는 임진각도 애써 외면한 것도 그런 까닭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8ㆍ15 이산가족 상봉이 발표되자 김씨도 생각을 고쳐 먹고 서둘러 방북신청을 냈다. 51년 서울로 내려오기 전 김씨에게는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두 남동생도 있었지만 방북신청 명단에는 일단 아내와 자식들을 써 넣었다. 부모님은 나이가 많아 돌아가셨을 것으로 생각되고 자식들을 찾으면 누나나 동생들 소식도 함께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 할아버지는 이번 설에는 임진각에 한번 가 볼 생각이다.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방북에 앞서 북녘의 공기를 조금이나마 가까이서 맡아보고 고향에 대한 향수에도 흠뻑 젖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김씨가 남한에서 재혼해 낳은 아들 경식(47ㆍ그린항공해운 부장)씨는 "방북에 대한 기대감으로 아버지가 많이 들떠 계신다"며 "이 때문에 이번 설은 우리 가족에게는 더욱 의미가 깊은 명절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코흘리개ㆍ핏덩이이던 자식들도 이젠 쉰을 넘어 환갑을 바라보는 노인이 됐을 텐데 요즘 들어 부쩍 그 애들이 눈앞에 아른거려 잠이 잘 오지 않아요" 50년 넘게 가슴속 깊이 응어리졌던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을 이번에는 씻어낼 수 있을까. 비록 몸은 서울에 있지만 마음은 벌써 북녘에 가 있는 김 할아버지에게 설은 이렇게 다가오고 있다. 오철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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