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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의 현대사적 의미 추적
입력2004-01-12 00:00:00
수정
2004.01.12 00:00:00
강동호 기자
■ 우리에게 다가온 조선족은 누구인가 임계순 지음/ 현암사 펴냄
불과 수십년전만 해도 만주에서 살거나 그 곳을 다녀 온 경험이 있는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일종의 무용담(?)을 들었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일제시대나 해방 전후기만 해도 문인들 중에는 으레 한반도의 북부와 만주를 제집 드나들 듯 하면서 작품활동을 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의 작품 곳곳에 나타나는 러시아의 문화와 애처로움이 묻어나는 음악 등은 뭇 사람들의 감상을 자극하기도 했다. 어쩌면 세계화니 국제화니 하는 말들이 무성한 지금보다도 50~100여년전의 동아시아야말로 가장 국제화된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역사 편입문제로 만주, 또는 동북 지역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지난 92년 8월 한ㆍ중수교 이후 조선족(또는 재중동포)들의 고국 방문이나 한국내 취업, 결혼 등은 아주 일상사처럼 돼버려 이젠 주변에서 그들을 보는 일이 전혀 낯설지 않게 됐다. 지난해 말엔 현직 대통령이 국적 회복을 요구하며 농성중이던 조선족들을 전격 방문하기도 해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임계순 한양대 사학과 교수가 쓴 `우리에게 다가온 조선족은 누구인가`는 현재 길림성, 흑룡강성, 요녕성 등 중국 동북지방 3개 성에 거주하는 약 200만명의 조선족들의 기원과 형성과정, 현대사적 의미를 다룬 책이다. 조선족들과의 접촉이 점차 많아지고 있지만 그들의 삶과 문화, 전통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는 극히 부족했다는 게 집필 동기다. 저자는 “최근 중국에 진출했거나 진출하려는 기업들 중에는 처음 조선족을 대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에 대한 불만이나 불신의 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다”며 “조선족 150여년의 역사가 우리와 사뭇 다른 만큼 그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어야 21세기 동북아 시대의 남북관계, 한ㆍ중관계 및 한반도 주변의 문제를 제대로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현재의 조선족(族)들은 19세기 중반을 전후한 시기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조선인(人)의 후손들로서, 때론 기근에서 벗어나기 위해, 때론 관리들의 가렴주구와 학정을 피하기 위해, 때론 일제의 탄압을 피해 독립운동을 벌이기 위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넜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인들이 만주, 특히 길림성 남부지역인 연변지역(간도)에 대거 이주하던 시기가 중국의 한인들이 이 지역에 유입하던 시기와 대체로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 이전까지는 중국을 통일한 청나라가 거의 200여년동안 동북지역을 그들 왕조의 발상지라 하여 조선인ㆍ한인 등의 출입을 완전 금지시킨`봉금지대`로 설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875년 청은 늘어나는 이주민들에 대한 통제의 한계와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봉금령을 해제하고 개간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 따르면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간도 귀속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러일전쟁(1904)과 을사조약(1905)으로 조선의 국권을 뺏은 일본이 간도에 대한 권리를 청나라에 넘겨 주기 전까지 조선은 거의 200여년간 이 문제를 두고 청나라와 논쟁을 벌였다. 1712년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백두산 정계비가 설치된 이후 이 비문에 표시된 토문강(土門江)의 위치를 두고 청은 두만강이라고 주장한 반면 조선은 말 그대로 송화강의 상류를 지칭한 것으로 해석했다. 특히 조선이 망해가는 시점인 1903년에도 대한제국이 파견한 간도 관리사 이범윤은 독자적으로 간도의 호구와 인구를 조사하고 세제와 지방 행정제도를 정비하는 등 간도 영유권을 관철시켜 나갔다. 그러나 조선을 대신한 일본은 1909년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체결, 철도 부설권 등 만주 침략을 위한 여러 이권을 얻는 대신 간도에 대한 권리를 중국에 넘겨주고 만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비록 고구려나 발해 등 우리의 조상들이 활약했던 고대사를 들추지 않아도 만주나 간도에 대한 향수(?)가 우리의 근현대사까지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만주는 현재 중국 땅으로 돼 있다. 중국 정부는 49년 중국 공산화를 전후로 이 지역에서 청나라와 일제가 남긴 잔재를 철저히 청산하는 한편 이 지역의 명칭을 동북 지역, 또는 동북 3성 등으로 바꿔 버렸다. 이 지역에 살던 조선족들도 중국 공산당의 이념과 정책에 따른다는 조건으로 삶의 터전과 소수민족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았다. 중국의 역사 왜곡으로 다시 관심을 끌고 있는 만주 문제가 감상에 치우친 국수주의적 접근에서 벗어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하기 위해서도 한번 읽어 둘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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