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양적완화가 발표되면서 우리 외환 당국의 환율 방어를 위한 움직임이 서서히 고개를 들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대놓고 개입에 나설 수는 없지만 우회적이면서도 가능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조합들이 속속 눈에 띈다.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 발표 직후인 지난 4일과 5일 서울 외환시장에 '쇼크'는 없었다. 당초 우려와 달리 외환시장은 차분하다 할 정도로 낙폭이 적었다. 원ㆍ달러 환율은 5일 전날보다 불과 20전 내린 1,107원30전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 정도면 사실상 보합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시장 전문가들은 장 초반만 하더라도 환율의 가파른 하락을 예상했다. 미국 뉴욕증시가 급등한데다 기준금리 인상 신호들이 잇따라 불거져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 초반에는 전날보다 3원이나 내리면서 1,104원50전으로 출발, 연 저점인 1,102원60전을 눈앞에 두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흐름을 뒤바꿀 만한 이벤트가 터져나왔다. 외국환은행의 외환거래에 대한 추가검사 소식과 함께 1차 검사에서 적발된 일부 외국계 은행의 국내지점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가 있을 수 있다는 소식이 시장을 냉각시킨 것이다. 내림곡선을 타던 환율은 곧바로 상승세로 돌아섰고 외환시장에는 많지는 않지만 달러 매수심리가 발동했다. 외환 전문가들은 당국의 이날 발표를 시장에 대한 우회적 방어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추가조사 시기가 한참 남아 있고 더욱이 적발에 따른 징계 수위에 대해서도 언급을 피하는 것이 통례임에도 당국자의 입을 통해 자연스럽게 시장에 전달된 것을 정상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1차 조사 발표 당시 정책적 효과를 맛봤던 당국이 미국의 양적완화 발표 이후 우리 외환시장이 일방적 흐름을 보이지 않도록 절묘한 차단작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당국이 이와 함께 준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카드는 공기업이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공기업들은 지난해 초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외화 기채에 나섰다. 지난해 2월부터 시작해 6월을 전후해 절정을 이뤘는데 이 물량만 15억달러가량에 이른다. 이 물량의 환 헤지 수요가 시장에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정미영 삼성선물 팀장은 "공기업들의 헤지물량이 시장의 흐름 자체를 바꾸기는 힘들어도 하락의 물꼬를 방어할 수 있을 정도는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국은 이를 통해 이른바 '스무딩 오퍼레이션'을 한 뒤 G20 정상회의를 마친 후 그동안 준비해왔던 외국인 자본 유입 억제대책을 꺼낼 계획이다. 오는 16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은 점을 감안할 때 정부의 대책은 생각보다 빨리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정부는 외국인 채권투자에 대한 원천징수 면제 철회조치 등의 대책을 국회의 의원 입법 형태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작업을 할 경우 관계부처 협의 등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해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국회에서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이 외국인 채권투자 소득에 대한 면세조치를 철회하는 입법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환은행의 한 딜러는 "양적완화 이후 신흥국을 중심으로 통화 절상 압력이 강해지는 흐름을 정부가 시장개입을 통해 역류하는 것은 당분간 힘들지 않겠느냐"며 "특별검사 등 우회적 형태의 개입이 당분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달러당 1,050원을 1차 저지선으로 하고 그 방어막이 무너진다고 해도 1,000원 벽은 사수할 것이라는 얘기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