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순 없을까. 이렇게 모두들 평화를 꿈꾸지만 이런 소박한 소망은 쉽게 실현되지 않는다. 인간의 끊임없는 이기심, 국가간 이해 등이 맞물려 결국은 싸움이 일어나고, 인간들은 서로를 죽고 죽인다. ‘묵공’은 수 천년 전 중국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이런 슬픈 현실을 투영시킨 영화다. 감독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시대에 혈혈단신으로 뛰어들어 평화를 정착시키려 했던 한 이상주의자의 이야기를 통해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준다. 이 모습은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21세기의 현실과 중첩돼 자못 감동적이다. 영화는 일본 소학상 수상작이자 베스트 셀러인 모리 히데키의 동명 만화를 화면에 옮겼다. 중국 춘추전국시대가 무대. 조나라의 10만 대군은 숙적 연나라와의 길목에 있는 인구 4,000명의 조그만 양나라를 함락 시키려 한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양나라의 운명. 이때 양나라를 돕겠다고 단 한명의 지원군이 홀연히 나타난다. 전쟁의 시대에 평화를 전파하는 묵가의 제자 혁리(유덕화)가 그 사람. 뛰어난 전략과 전술로 10만 대군의 조나라를 격파하는 그를 양성의 백성들은 물론 왕자인 양적(최시원)도 믿고 따르게 된다. 그러나 왕과 주변의 권력자들은 이렇게 백성들에게 칭송 받는 혁리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누명을 씌워 성밖으로 내쫓는다. 결국 위태로운 양나라를 구해 평화를 정착시키려던 혁리의 꿈은 이렇게 끝을 맺고 양나라도 내부분열로 인해 조나라의 명장 항엄중(안성기)에게 함락되기에 이른다. 자신을 내친 양나라를 구하기 위해 다시 전장에 뛰어든 혁리. 마침내 혁리와 항엄중은 양나라의 운명을 걸고 마지막 최후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 총 제작비 106억 원, 6,000명의 인원을 투입한 영화의 스케일은 장대하다. 고대의 치열했던 전투의 모습을 실감나게 스크린에 담았다. 하지만 영화는 스펙터클한 화면을 보여주는 데만 집중하지 않는다. 감독은 인간세상의 치열한 권력암투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극, 위정자들의 정치논리로 인해 힘없는 희생되는 민중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화면에 담는다. 그 모습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교묘히 중첩되며 관객을 전쟁과 평화에 대한 깊은 사색의 시간으로 이끈다. ‘묵공’의 미덕은 이렇게 장대한 화면 속에 ‘반전’의 메시지를 절묘하게 녹여낸 데 있다. 유덕화를 비롯한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는 또 하나의 볼거리. 한국, 중국, 대만, 홍콩 등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배우들은 마치 한 나라에서 모인 사람인양 절묘하게 어울리며 호흡한다. 특히 안성기와 최시원은 중국어로 연기하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이질감 없이 영화에 잘 녹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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