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피랍된 한국인 인질 23명 가운데 1명을 살해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을 취함에 따라 남은 인질들의 생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확한 협상 과정을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탈레반측은 아프간측에 붙잡힌 탈레반 포로 8명과 한국인 인질 8명의 맞교환을 카드로 내세웠다가 아프간 정부가 전혀 들어줄 기색을 보이지 않자 살해를 현실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여성과 건강이 악화된 남자 1명 등 8명만을 선별, 석방함으로써 비난여론을 다소나마 차단하면서도 추후 협상에서 자신들의 의도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추가살해의 책임은 자신들이 아닌 아프간과 한국 정부측에 있다고 떠넘기려는 속셈인 셈이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아프간 정부가 우리 요구(포로 석방)를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인질 한 명을 총으로 쏴 죽였다”며 “앞으로도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추가로 살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남은 인질들의 생사도 장담할 수 없는 국면에 몰린 것이다. 여기에 8명의 석방 자체도 루머로 끝난다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탈레반은 한국시간으로 26일 새벽 5시30분을 마지막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상황. 유수프는 로이터통신과의 전화통화에서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 죄수들을 이 시간까지 석방할 준비가 되지 않을 경우 나머지 인질들도 살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 전개를 따른다면 탈레반은 막판까지 포로와 인질의 맞교환을 내세우면서 추가적으로 금전을 챙기려 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프간 정부의 태도는 여전하다. 아프간 외무부의 술탄 아마드 바힌 대변인은 탈레반의 맞교환 요구에 대한 외신의 질의에 “죄수를 인질들과 맞교환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입장은 종전과 같다”며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결국 탈레반와 아프간 정부가 종전과 같은 강경 자세를 고수할 경우 추가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도 점쳐지는 대목이다.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최종 확인되지는 않고 있지만, 탈레반측이 8명의 인질을 우선적으로 석방함에 따라 탈레반이 남은 인질들을 놓고 한꺼번에 협상할지, 종전처럼 ‘단계적 조치’를 취할지다. 일단은 ‘일괄 협상’쪽에 무게가 실리지만, 탈레반측이 포로 석방과 현금의 동시 해결을 끈질기게 요구할 경우 이의 진척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석방이 이뤄질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상황은 장기전으로 진행될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추가 희생자가 발생할 가능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장기전으로 진행될 경우 인질들의 건강 상태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우리 정부측은 인질로 잡혀 있는 한국인들의 건강에 아직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일부에선 3~4명의 건강이 썩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당장에는 이들의 건강 상태가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고 인질들 대부분의 나이가 젊은 만큼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협상이 장기화할 경우 의외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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