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체들이 국제 농수산물 및 원자재 가격 상승, 이른바 애그플레이션 조짐을 이유로 앞다퉈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섬에 따라 하반기 장바구니 물가안정에 비상이 걸렸다.
식품기업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공공연하게 가격 동결을 요청하면서 가격 인상을 철회하는 등 정부 눈치보기에 급급했으나 하반기 들어서면서 소비 침체로 매출이 부진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더 이상 원가 부담을 버티지 못하겠다며 원가인상분을 가격에 반영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식품업체의 가격 상승 자제를 요청하던 정부 입장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하이트맥주가 가격 인상 방침을 밝힌 27일 국세청 관계자는 "그동안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가급적 가격 인상을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언제까지 원가 인상에 따른 업체의 고통을 감내하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가격 인상 자제에 대한 정부의 요구가 최근 들어 예전보다 뜸하다"면서 "수년간 쌓인 가격 인상 요인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연초부터 가격 인상 방침을 밝혔다. 정부의 압박으로 철회했던 업체들을 비롯해 식품업계 전반에 도미노 가격 인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소주의 원료인 주정값이 인상된 소주생산업체들도 가격 인상을 고려하는 등 주류 제품 가격 인상이 예고되고 있다.
식품의 주요 재료인 원자재 가격은 세계적인 이상고온 현상 등으로 인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라면ㆍ빵의 주원료인 밀 가격의 경우 지난 2009년 톤당 206달러에서 올 들어 332달러까지 폭등했다. 두부 등의 원료인 대두 역시 2009년 톤당 375달러에서 623달러까지 오르는 등 급등세를 연출했다.
국민 간식인 라면도 주요 원료인 밀가루ㆍ팜유 가격이 급등한데다 스프 원료인 농산물과 해산물의 가격 폭등으로 원가 부담이 가중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삼양식품이 가격 인상을 발표함에 따라 이어 팔도ㆍ오뚜기 등 하얀국물 라면 판매가 급락한 업체들을 중심으로 가격 인상 압박이 상당할 것이기 때문에 가격 인상 논의에 들어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분업체들은 국제 밀 가격 상승으로 인해 연말에 큰 폭의 가격 인상을 단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맥주 원료인 맥아 가격은 2009년 톤당 480달러에서 577달러로 20.2%, 보리 가격은 2009년 톤당 146달러에서 295달러로 102.1% 올랐다. 하이트진로의 가격 인상에 따라 지난해 말 가격 인상 방침을 사흘 만에 철회했던 오비맥주도 가격 인상을 검토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한편 국내 식품업체에 비해 외국계 식품업체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가격을 올리고 있어 역차별 논란도 나오고 있다. 스타벅스는 5월에 32개 제품가격을 300원씩 인상했고 버거킹과 맥도날드도 각각 지난해 말과 올 초 주요 제품 가격을 올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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