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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사장단 강좌로 본 '세상읽기'

선제적 사업구조 개편…보호무역 대비…<br>'불황기 리더십' 길잡이로


매주 수요일 오전8시 서초동 삼성타워. 이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삼성그룹을 이끄는 주요 수뇌부들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고뇌에 빠진다. 바로 삼성 사장단 회의 때문이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과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26개 주력 계열사 40여명의 최고경영자(CEO)급들이 참석하는 이 협의회는 지난 2008년 7월부터 가동돼 운영되고 있는 삼성의 최고 협의ㆍ논의기구다. 삼성 CEO들은 올 들어 외부 자문 청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처음에는 전대미문의 글로벌 불황 속에 사장들이 한가하게 강의나 듣고 있다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최근 재계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이들이 짚어내는 주제는 글로벌 불황 속에서 경영진이 반드시 곱씹어야 할 핫 이슈들이다. 강의내용은 언뜻 교양강좌 수업같이 보이지만 최근 리더십 공백을 극복하려는 삼성 경영진은 이 강연을 통해 세상을 읽고 있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10일 “사장단 협의회에서 외부 강사를 간혹 초빙해왔으나, 특히 올 들어서는 그 빈도가 부쩍 증가했다”며 “글로벌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지혜를 찾다 보니 예전보다 외부 의견을 더욱 많이 듣고 있다”고 전했다. #큰 폭의 적자, 어떻게 하나 1월23일. 삼성의 핵인 삼성전자 실적발표가 그룹 안팎을 뒤흔들었다. 반도체ㆍLCD 분야에서만 1조원 가까운 적자를 냈으며 전체적으로 7,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봤다. 2000년 분기별 실적발표가 도입된 이래 8년 만에 처음 나는 적자다. 새로 취임한 CEO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장과 김순택 삼성SDI 사장이 차례로 나섰다. 실적발표 닷새 후인 28일, 현 원장은 거시경제 전망에 대해 “대체로 오는 2010년 정도에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사장단은 “각국 정부가 돈을 마구 찍어내는데 인플레이션 관리가 가능한가” “환율 전망은 어떤가” 등 경제전망에 관한 질문을 쏟아내면서 전략수립에 골몰했다. 다음주인 2월4일에는 삼성 내부 인사인 김 사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사업구조 성공사례를 발표했다. “SDI의 경우 매출이 크게 늘던 2004년 2차전지 등으로 선제적 사업구조 재편에 나서 2008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흑자전환에 성공했습니다.” 불황 속에 삼성 사장단은 물론 재계 전체가 관심을 기울일 만한 대목이었다. #3월 위기 가능성은 희박하다 2월10일 미국에 버락 오바마 정부가 출범했다. 세계 금융불안에 따라 한국 경제의 3월 위기설이 시장을 뒤흔들었다. 급박한 국제환경 변화 속에 2월11일 먼저 김병국 고려대 교수가 강의에 나섰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와 국제정치’ 강연을 통해 다자주의 시대에 관한 개략적 설명을 했다. 특히 김 교수는 아프가니스탄ㆍ북핵 등 국제위기를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 설명하면서 사장단의 이해를 도왔다. 25일에는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을 초청했다. “3월 위기설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세계 경기회복 전망은 U자형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상반기 원ㆍ달러 환율은 달러당 1,300원, 하반기 1,124원으로 봅니다. 최근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어 법적 대응력 등에 대비해야 합니다.” 삼성 계열사들은 정 소장이 이끄는 삼성경제연구소의 환율 및 경기 전망을 경영지표로 삼아 대책마련에 분주하다. 삼성그룹은 아예 김현종 전 유엔 대사를 통상문제 전담 사장으로 영입해 특허분쟁 등 보호무역주의 팽창에 따른 정세변화에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몽골이 어떻게 세계시장을 제패했나 최근 LCD와 TV가 의외의 호조를 보이는 등 경기가 바닥을 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삼성 사장단은 곧바로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를 초청했다. 강의주제는 ‘몽골 제국의 세계 평정 비법’. 김 교수는 몽골이 70만~100만에 불과했던 인구와 가축을 기르던 정도의 경제력, 문자조차 없던 낮은 문화 수준에도 불구하고 몽골 제국을 건설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칭기즈칸 일족과 공신들이 제국을 공유한다는 개념을 갖고 정복을 공동사업으로 생각했다”며 “피정복 민족의 전문가를 흡수하는 한편 문화를 존중하는 포용력 또한 동력이 됐다”고 지적했다. 삼성 식으로 몽골을 해석하면 세계시장 제패를 위해서는 내부적으로는 개인의 공적을 다투지 않고 대외적으로는 현지의 문화를 최대한 존중해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한편 현지 인재를 적극 유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시장이 바닥을 치고 회복기에 돌입하는 것 아니냐는 논쟁이 치열한 요즘, 기업 CEO라면 누구나 한번쯤 곱씹어볼 내용이다. 삼성의 한 고위관계자는 “굳이 삼성의 비즈니스와 연관짓지 않는 강의였지만 사장들이 경영과 관련해 저마다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사장단은 이밖에도 박종식 삼성지구환경연구소장과 김영배 경총 부회장으로부터 각각 환경 및 노사관계 관련 강의를 청취하는 등 경영에 꼭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는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계열사 사례에서 몽골의 역사, 지구환경까지. 삼성 사장단의 ‘세상읽기’가 재계의 바로미터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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