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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 폐막한 소치동계올림픽은 우리 국민에게 한편의 드라마였다. 17일 동안 우리 선수들의 빛나는 투혼에 갈채를 보내며 국민 모두는 웃고 울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대표선수들의 경기에 대한 열정과 과감한 도전정신은 국민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남긴 스포츠 축제였다. 특히 세계적 기량을 갖춘 일부 선수와 전통적 강세 종목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우리나라 대표팀의 선수 및 종목 구성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또 국내 쇼트트랙계의 파벌싸움 속에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의 선전은 안 선수를 해외로 내몬 체육계의 현실에 대한 거센 비판을 불러왔다. 해외 심판들의 편파판정 논란 속에 금메달을 놓친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는 밤을 새며 경기를 지켜본 국민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소치올림픽에서 드러난 이런 모습은 비단 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게 올림픽을 지켜본 재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번 올림픽에 나타난 대표팀의 문제점과 과제가 국내 기업들이 처한 현실과 상당 부분 겹쳐진다는 것이다.
◇1~2위 쏠림현상 오버랩=우선 한국 선수단이 김연아·이상화 등 일부 스타 선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처럼 우리 경제도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소수의 잘나가는 기업에 대한 쏠림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성적은 일부 에이스들의 컨디션에 따라 들쭉날쭉했다. 이러다가는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스타 선수들의 은퇴에 따른 공백을 영 메우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체육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동계올림픽에 6차례나 출전한 이규혁 선수는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경기를 치른 뒤 "선수 1~2명만 갖고는 올림픽에서 승부할 수 없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1~2명에 의존하는 소치의 모습은 재계 1·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에 크게 기대고 있는 우리 경제의 자화상과 오버랩된다.
삼성과 현대차, 이른바 '빅2' 쏠림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기준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영업이익 합계는 43조원으로 국내 기업 전체 영업이익의 30.4%에 달했다. 두 그룹의 영업이익이 전체 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19.7%, 2010년 25.2%, 2011년 24.6%로 상승세를 보이다가 2012년에 처음으로 30%를 돌파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흔들릴 경우 우리 경제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국내 산업의 균형 잡힌 성장을 위해 다양한 업종과 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10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고는 있지만 모두 주력시장의 성장 정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제2의 삼성전자·현대차를 키워 경제 체질을 튼튼히 하고 경제의 쏠림현상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판 선수' 내몰기도 닮은꼴=우리나라 국적을 버리고 러시아에 3개의 금메달을 안긴 안현수 선수의 사례는 과도한 규제와 반기업정서 속에 한국을 떠나야 할 처지로 내몰리는 국내 기업들의 현실과 닮은꼴이다. 국내 기업들은 특히 안 선수의 모습에 각종 규제로 한국 대신 해외에 투자하거나 해외로 생산거점을 옮길 수밖에 없는 현실을 투영하게 된다.
한진그룹의 경우 미국 LA에 10억달러 이상을 들여 윌셔그랜드호텔을 짓고 있다. 공사기간에만 1만1,000여개의 일자리와 8,000만달러의 세수효과를, 완공 후에는 1,700여개의 일자리와 LA시에 매년 1,600만달러 이상의 세수증대효과를 발생시키는 대형 프로젝트다. LA시는 최대 7,900만달러의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것으로 한진의 투자에 화답했다. 반면 한진그룹이 국내에서 서울 송현동에 7성급 호텔을 조성하는 계획은 규제에 막혀 미뤄지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경제단체 고위관계자는 "과도한 규제 등으로 기업이 경영활동에 매진할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면 결국 기업이 해외로 투자나 생산거점을 옮기면서 '산업계의 안현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통상임금 등 노사 문제도 기업들을 해외로 내모는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임금 압박 등으로 끊임없이 철수설에 시달리던 한국GM은 최근 군산 공장 생산량을 35% 줄이기로 했다. 한국GM 측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업계에서는 통상임금 판결로 인한 임금 상승 압박이 언제든지 대량 구조조정의 빌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한 관계자는 "통상임금뿐 아니라 근로시간 단축, 정년 60세 의무화 등 최근 노사 현안은 모조리 기업을 압박하는 이슈들뿐"이라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머지않아 외국계 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엑소더스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력종목 다양화 공동의 과제=선수 저변 확대와 함께 주력종목의 다양화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우리나라가 이번 소치올림픽에서 획득한 메달은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피겨스케이팅 등 3개 종목에서 모두 나왔다. 쇼트트랙에 대한 과도한 집중현상은 다소 완화됐지만 아직도 전략종목 다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컬링·봅슬레이·루지 등 열악한 환경의 비인기종목 선수들이 세계적 강호들에 뒤지지 않는 기량을 선보이며 4년 후 평창에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국내 기업들 역시 스마트폰·가전·자동차·철강·화학 등 기존 주력종목 외에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이 시급한 상태다. 10대 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컬링이나 봅슬레이 같은 종목을 장기적으로 육성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국내 기업들도 다양한 신사업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몇몇 주력산업에 의존하고 집중하다가는 혹시 문제가 생길 경우 효자종목 자체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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