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IT부품업체인 M사는 연이어 닥치는 악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회사 영업담당 임원인 K씨는 팬택과의 납품상황을 체크하면서 “환율하락에 가만히 앉아서 영업이익을 까먹고 있는 상황에서 팬택의 워크아웃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힘들어 했다. 재계가 때이른 한파에 몸을 떨고 있다. 환율하락으로 수익성이 뚝뚝 떨어지는 상황에서 팬택계열의 워크아웃 추진 소식까지 겹치면서 연말 재계에 찬바람만 부는 양상이다. 때마침 인사시즌에 접어들면서 실적이 부진한 기업들의 임직원들 모두가 뒤숭숭한 분위기다. 특히 경영상황이 한계에 도달했거나, 공급과잉으로 수익성이 악화한 중견 중소기업들은 그동안 소문으로 떠돌던 팬택계열의 자금경색 소식에 안절부절하고 있다. 자칫 금융권이 자금운용을 빡빡하게 가져갈 경우 팬택발 도미노 현상마저 우려하는 모습이다. 실제 M사의 경우 대만의 경쟁업체들이 공장 라인을 중국으로 이전하며 가격을 낮춰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에서 환율까지 급락해 영업이익은 이미 적자로 돌아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팬택의 결제통로가 막혀버릴 경우 적자보다 생존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벌써부터 일부 기업들은 대규모 자체 구조조정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적자로 몸살을 앓고 있는 L사의 경우 투자 중단은 물론 인적 구조조정도 검토하고 있다. 대기업이라고 현재 상황이 마냥 한가롭지는 않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 역시 최근의 환율 하락으로 수익관리에 치명타를 입을 전망이다. 현대증권은 이날 환율하락으로 삼성전자의 4ㆍ4분기 영업이익이 당초 예상치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급과잉 속에 판가 하락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LCD 업계는 전날 한ㆍ미ㆍ일 3국 공정거래당국이 공조해 카르텔 조사에 나선다는 소식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카르텔 조사가 가격 하락을 부추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재계 전반에 냉랭한 기류가 돌면서 정기 인사를 앞둔 기업마다 잔뜩 몸을 사리고 있다. 다음주 인사를 앞둔 L사의 경우 최고경영자부터 사업부 임원까지 실적 부진으로 인사대상에 올라있다는 소문이 돌며 회사 전체가 어수선하다. 내년 1월초 임원인사를 앞둔 삼성그룹도 철저하게 실적이 인사 기준이 되고 있다. 최근 임원인사를 한 LS그룹의 경우 진로산업 최고경영자 손종호 전무와 기계사업본부장 심재설 전무의 실적을 높게 평가해 각각 부사장으로 발탁 승진하는 등 담당 사업의 실적을 기준으로 인사를 단행했다. 대기업 한 임원은 “환율하락, 팬택계열의 부도 등으로 재계가 어느 해보다도 추운 겨울을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업들의 임원인사에서도 실적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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