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여명의 택배기사로 구성된 CJ대한통운 비상대책위원회는 운임 요금 인하와 배송 사고 벌금 부과제 거부를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강성노조단체인 화물연대까지 가세하면서 택배거부 사태가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농후해 보인다. 사측은 운임 보전 카드를 꺼내 들고 이들을 회유하고 있지만 양측의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택배를 산업으로 키워야= 택배 시장이 급팽창한 지난 10여년 동안 업계는 제대로 된‘게임의 룰’없이 택배기사들의 열악한 처우, 과열 경쟁 등 고질적인 문제가 안으로 곪아왔다. 택배업계의 한 관계자는 “CJ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의 파업도 실상은 택배법 등의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무리한 경쟁으로 인해 불거진 사태”라면서 “이제는 정부가 택배업을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하고 지원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택배를 독립된 산업으로 인정해‘택배법’을 제정해 달라는 업계의 목소리가 높다. 법이 생겨야 이를 기반으로 택배 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택배는 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 혜택에서 예외가 많다. 산업용 전기세 적용과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혜택이 대표적이다.
현재 제조업 자가창고는 일반 대비 78%의 수준의 전기세를 납부하고 있다. 이에 비해 물류업계는 종합물류업체 창고의 경우 지식서비스산업 특례를 적용해 일반 대비 3% 할인된 97%의 전기세를 납부하고 있다. 택배영업소는 이런 혜택에서 제외되고 있다.
고속도로 통행료도 화물자동차는 고속버스와 비교해 볼 때 훨씬 많은 통행료를 내고 있다. 서울-부산 편도를 기준으로 했을 경우 화물차는 고속버스 대비 56% 더 많은 통행료를 낸다. 그나마 10톤 이상 화물차는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심야시간에 통행료를 할인받지만 택배에 주로 사용되는 소형 화물차는 할인혜택이 전무한 실정이다.
택배 단가 현실화를 위해 배송원가 분석을 통해 운임 최저가 기준을 마련하는 표준요율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표준요율제는 화물의 무게, 배송거리에 따라 요금을 표준화하고 이에 맞춰 비용을 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 기차나 버스 등에 도입됐다.
업계 관계자는 “택배법과 표준요율제가 도입되면 화주에게 저가로 입찰받는 문제가 없어져 과당경쟁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며 “업체들이 가격이 아닌 서비스로 경쟁하게 돼 서비스 품질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내 택배 단가는 미국 1만원, 일본 7000원, 중국 3300원과 비교해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물류 회사처럼 주기적으로 운영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갖고 있다면 운임을 인상해도 이탈하려는 고객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택배시장 상황 어떻길래= 1992년 태동한 국내 택배산업은 홈쇼핑과 전자상거래 활성화 덕분에 연간 시장 규모가 200억원에서 20년만인 지난해 3조 5,000억원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독립된 업종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의 적용을 받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화물차 1대만 있으면 누구나 택배 사업자가 될 수 있다 보니 업체가 난립할 수밖에 없다. 공급 과잉으로 서비스에 대한 가격 결정권은 수요자에게 넘어갔다.
택배를 이용하는 기업은 저가 입찰을 통해 택배회사를 선정해 저가 덤핑 경쟁이 갈수록 심해진다. 전체 물량의 95%를 차지하는 기업 택배의 경우 지난 2000년 평균 단가가 3,500원이었지만, 현재 2,200원으로 10년 동안 40% 가량 싸졌다.
상자 수거(집화) 택배기사 수수료(330원), 도착지 배송 택배기사 수수료(880원), 운송단계별 비용(920원)등을 제외하면 택배회사가 순수하게 버는 돈은 70원에 불과하다. 이익률이 2~3%에 불과한 셈. 택배 빅3 업체 가운데 CJ대한통운을 제외한 현대로지스틱스(-532억원)와 한진(-105억원)은 지난해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으며 중견 업체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배송 택배기사도 열악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건당 880원의 수수료를 받아도 여기서 유류비, 보험료, 통신비, 차량 할부금 등을 빼고 나면 택배 한 상자당 676원 정도만 손에 쥔다.
업계가 단가 인상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업계 2위인 현대로지스틱스가 올 1월 택배비를 최소 500원 이상 인상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허락’한 일부 화주 물량 단가만 100~500원가량 인상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단가는 떨어지지만 택배 물량은 해마다 늘어 시장규모는 2000년 8,800억원에서 2009년 2조7,200억원, 지난해 3조5,200억원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장은 커지지만 저가 경쟁으로 택배회사의 수익과 택배 기사의 생활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면서 “이번 운송거부 사태를 계기로 택배업계의 현실을 하루 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