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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나를 돕고 하늘로 간 친구들을 위한 獻辭(헌사)"

초등학교 5학년때 부터 서울경제·한국일보 배달<br>친구 도움으로 晝耕夜讀, 37살 때 사법고시 합격<br>"먼저 떠난 친구 아이들 이젠 내가 도와줄 차례"

이상복 변호사가 23년전 자신이 배달하던 서울경제·한국일보 본사를 찾아 옛 일을 회고하고 있다.

이상복 변호사가 23년전 자신이 배달하던 서울경제·한국일보 본사를 찾아 옛 일을 회고하고 있다.

이상복 변호사가 23년전 자신이 배달하던 서울경제·한국일보 본사를 찾아 옛 일을 회고하고 있다.

자전소설 '모래무지…' 출간 증권 전문 변호사 이상복씨
지지리도 공부를 못하던 불량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천형(天刑)같은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이란 어린 나이에 신문배달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또래 아이들은 이불 안에서 단 꿈을 꾸는 새벽에 소년은 고사리 같은 손을 ‘호호’ 불며 신문을 돌렸고, 남는 시간에는 변두리 재개봉관에서 성인영화를 보고, 도색 잡지도 읽으며 빈둥거렸다. 고만고만한 또래들과 술을 마시고 담배까지 피워 물었던 이 소년은 중학교 때 운명 처럼 다가온 한 친구를 만난다. 잘 생긴 얼굴에 우등생이던 친구는 선생님 처럼 소년을 이끌었고, 소년은 친구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서서히 변모시켰다. 실업계 고등학교 진학 조차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이 소년에게 친구는 꿈을 키워 줬다. 친구의 격려에 용기를 얻은 소년은 인문계 고등학교로 방향을 틀었고, 명문대에 진학, 사법고시에 합격해 마침내 변호사가 됐다. 그의 또 다른 친구는 그가 돈이 없어 복학을 못하고 있을 때 선뜻 등록금을 내줬다. 하지만 이 두 친구는 마흔을 갓 넘긴 나이에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소설 같은 이 이야기는 증권전문 변호사 이상복씨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그는 청소년기에 가난과 열등감으로 방황하던 자신을 물밑 진흙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사는 ‘모래무지’로, 자신을 도와주고 홀연히 세상을 등져 버린 두 친구를 민물고기 ‘두우쟁이’로 비유해 ‘모래무지와 두우쟁이’라는 자전적 소설을 출간했다. 변호사라는 선망 받는 직업을 갖고 있는 그가 열등감으로 얼룩진 시절의 추억을 굳이 책으로 펴낸 사연을 들어봤다. -증권전문변호사라고 들었습니다. 또 대학시절 전공은 경제학을 전공하셨더군요.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고려대학교 법학대학원을 마치고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사법연수원을 마치고는 증권선물거래소에서 일했습니다. 지금은 그 때의 경험을 살려 법률사무소 `지킴`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어보니 ‘유년의 기억을 남에게 공개하기가 쉽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소설로 펴낼 생각을 했나요. “처음에는 소설을 쓸 생각까진 못했습니다. 다만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살아온 삶을 알려줘야 겠다는 생각으로 원고를 정리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한 선배가 그 원고를 보고 소설로 내보라고 권유를 했습니다. 중학교 교사인 아내도 권했고요. 주위에서 부추기니 나도 ‘친구의 영향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여동생 두 명을 먼저 보내셨더군요. “어릴 적에 집이 너무 어려워서 폐렴에 걸린 여동생 두 명이 병원에도 못 가보고 한 달 새에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 기억 때문에 저는 죽음에 대해서 남들 보다 많이 생각한 편입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친구 두 명도 일찍 세상을 떴지요. “소설 속에서 ‘명훈’으로 나오는 친구 이상설이 내가 미국 유학 중이던 2002년 10월 뇌졸중으로 죽고, 내게 그 사실을 알려준 김경현(소설속 형준)이 2004 12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습니다. 특히 상설이는 불량 학생이던 나에게 공부도 가르쳐 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준 선생님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공부를 잘 하던 상설이는 KAIST를 졸업한 항공우주 과학자였습니다. 월급을 털어 등록금을 내준 형준이는 은행에 다녔었구요” -소설 속의 무대는 시종일관 신문보급소 입니다. 신문배달을 오래 하셨나요. “고등학교 때 쉰 적은 있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신문배달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 첫 직장이 서울경제신문과 한국일보를 배달하던 보급소였습니다. 배달은 대한일보에서 처음 시작했지만 한 달 만에 그 신문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월급도 못 받고 직장을 옮겼으니, 서울경제신문이 내 첫 직장인 셈이지요. 그 때가 73년 5월 이었습니다” -제가 89년초에 입사했으니 이변호사가 16년 입사 선배인 셈이네요. “배달 소년도 정식 사원인가요” (웃음) -초등학교 5학년 신문배달을 시작했는데 일이 어렵지는 않던가요. “아침에 일어나는게 힘들었지요. 그리고 당시 서울경제신문과 한국일보가 국내 일간지중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신문이어서 무게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신문이 하루 쉬는 월요일에 일간스포츠를 배달하러 나오는 것도 고역이었지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려니까 신문이 너무 무거워서 외딴 집에 배달을 빼 먹은게 양심에 걸리는군요” -변호사라는 직업도 글 쓰는 일이 많은 직업입니다만 소설은 쓸 만 하던가요. “소설의 구성이나 전개방식을 참고하기 위해서 요새 팔리고 있는 소설을 10권 이상 사서 읽으면서 문장을 다듬었습니다. 이전에 증권 관련 서적을 쓴 경험도 도움이 됐고요. 제 소설을 전문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할 수야 있겠습니까. 글쓰기는 전문서적이 훨씬 쉬웠습니다” -배달 소년 시절 부수확장에서 1등을 하셨다지요. “예비 독자들과의 관계가 중요하지요. 내 독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꾸준한 설득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에게 인사 잘하고, 새로 이사 오는 집이 있으면 가서 짐을 날라 주기도 했지요”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서 “나는 보급소에서 일하면서 사회에 대해 눈을 떴다”며 “그 때 인사성이 바르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어른들에게 귀여움을 받는다는 걸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두 명의 친구가 남기고 떠난 4명의 아이들을 어떻게든 내가 도울 것”이라며 “소설을 팔아 나오는 인세는 모두 그 아이들의 학비에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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