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한 대형 증권사 강남지역의 프라이빗뱅커(PB)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강모 PB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 쌍의 중년 남녀가 찾아와 자산을 맡기고 싶다며 상담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불륜관계였다. 남성이 내연녀에게 자신을 부자로 속이기 위해 일부러 PB센터를 찾은 것이다.
강 PB는 “그 남성과 함께 강남 지역 PB센터 여러 곳을 돌아다닌 여성이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따로 찾아와 사실 둘은 부부관계가 아니라며 그 남자가 자신에게 사기를 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고액자산가들의 투자 채널로 급부상한 강남지역 증권사 프라이빗뱅킹(PB)센터에 ‘체리피커(Cherry Picker)’들이 잇따라 출몰하고 있다. 애당초 투자상담이 목적이 아니라 고액자산가를 사칭하기 위해 PB센터를 방문하거나 식사 대접, 고급 기념품만 받고 연락을 끊는‘먹튀’고객들이 속출하고 있다.
자신이 로또에 당첨돼 100억원을 가지고 있다는 남성이 PB센터를 찾아오기도 한다. 또 다른 증권사의 강남 PB센터 직원에 따르면 한 남성이 100억원을 어떻게 투자할 지 상담을 받은 후 PB에게 식사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연락이 끊겼다. 고액자산가들이 모이는 PB센터의 서비스가 일반 지점보다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로또 당첨자로 사칭한 것이다.
역시 강남에 있는 C증권사 PB센터에는 땅 보상을 받게 된다며 찾아온 한 중년 여성이 세무상담을 받고 와인 등의 기념품을 요구해 받아간 뒤 연락이 끊기기도 했다. C증권사 PB는 “진짜 고액자산가들 대부분은 먼저 기념품을 요구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라며 “간혹 기념품을 요구해 받아간 뒤 연락이 끊기는 사람들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와는 반대의 상황도 벌어진다. 진짜 고액자산가를 체리피커로 오해하는 것이다. 한 증권사의 PB는 “얼마전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 고객이 비서를 데려와 거액의 자산관리를 받고 싶다고 찾아왔다”면서 “처음엔 고액자산가를 사칭한 것으로 알고 오해했는데 본인 확인을 위해 직접 사무실을 방문하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10억원을 맡긴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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