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사태가 터지고 그 모든 책임이 감독부실로 귀결되자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금감원이 전지전능한 곳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감독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금융계가 마음만 먹으면 감독의 손이 벗어난 곳에서 얼마든지 눈속임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대출금리 체계에 대해서도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금융감독 당국의 한 관계자는 "금리결정은 이미 자율화돼 있고 당국 등은 큰 그림의 금리 흐름만을 체크하는 수준"이라면서 "가산금리를 결정하는 것 역시 경쟁체제의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하는 것인데 어떤 구조를 갖고 책정하는지는 간섭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컨대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결정할 때 기준금리 외 9개의 가산금리 항목이 있는데 현실에 맞춰 가산금리의 폭을 책정한 뒤 대출금리를 시장에 내놓는 구조라는 것이다. 또 "가산금리가 어떻게 책정됐는지 수시로 체크한다고 하면 그것 역시 시장자율화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세밀하게 감독하지만 감독의 영역을 넘어선 경영행위는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가산금리 부풀려 이자 챙겨 구속=대출금리는 '지표금리+가산금리'로 구성된다. 가산금리는 9개의 항목이 있는데 금융계가 스스로 조정할 여지는 특히 많다. 그래서 가산금리를 조작하거나 높이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농협이 자체 감사결과 금리조작으로 수백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사실을 적발한 게 대표적. 자체감사를 통해 적발한 것인데 금융계가 금리조작으로 얼마나 쉽게 이익을 챙기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실제로 지난해 11월부터 농협중앙회가 자체감사를 한 결과 56개 단위농협에서 금리를 조작해 1만659명으로부터 324억7,400만원의 부당이자를 챙겼다. 앞서 지난해 11월 검찰은 과천농협 등이 CD금리 연동대출의 가산(加算) 금리를 조작한 혐의를 발견하고 담당직원을 구속하기도 했다. 검찰 조사결과 지난 2009년 1월부터 2010년 6월까지 단위농협은 변동금리를 임의로 고정하고 대출이자를 더 많이 받았고 같은 기간 동안 예금금리는 5.84%에서 4.23%로 1.61%포인트 내린 반면 대출 금리는 8.44%에서 8.28%로 겨우 0.16%포인트 내리는 데 그쳤다. 금리조작을 통해 부당이득을 챙기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금융감독 당국도 몰랐다. 거기까지 감독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농협은 현재 금리조작으로 챙긴 이자를 환급해주는 절차를 밟고 있다.
◇전결권 높은 신용대출금리 높이기도=신용대출금리 책정은 주택담보대출 등에 비해 금융계가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때문인지 높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신용대출금리는 웬만해서는 잘 움직이지도 않는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9년 연 7.09%인 신규 신용대출금리는 2010년 7.19%, 지난해 7.82%로 오르더니 올해 5월에는 7.95%까지 뛰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8.44%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격차가 0.49%포인트에 불과하다.
은행들은 신용대출금리 추이가 시장금리에 연동돼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코리보ㆍ코픽스ㆍCD금리 등 다양한 기준금리를 적용해 신용대출금리를 결정하는데 시장금리가 내려가면 신용대출금리도 함께 떨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시장금리가 급락해도 신용대출의 금리는 큰 변화가 없다.
예컨대 기업대출금리는 2008년 7.17%에서 올해 5월 5.74%로 뚝 떨어졌다. 회사채 금리는 7.02%에서 4.01%로 급락했고 국고채 금리는 5.27%에서 3.38%로 내려갔다. 대표적인 기준금리인 CD금리도 5.49%에서 3.54%로 2%포인트가량 하락했다. 하지만 신용대출금리는 7% 후반대로 되레 올랐다. 9개의 가산금리 항목 가운데 은행에서 쉽게 움직일 수 있는 목표이익과 전결금리 등을 높여 더 많은 이익을 챙긴 것으로 풀이된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은행들이 교묘하게 가산금리를 조정해 신용대출금리를 올린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당국의 철저한 감시와 감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경기상황과 경제성장률 등을 감안해 목표이익을 정하는데 과도하게 설정하지 않는 게 현실이고 전결금리 역시 가산금리를 붙이는 사례보다 오히려 깎아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영역? 변액보험은 틈새=보험은 이른바 전문가들의 영역이다. 같은 금융계에 종사를 해도 은행ㆍ증권 등도 유독 보험 분야에는 약하다.
올해 초 금융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변액보험 수익률 논란도 접근하기 어려운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점 때문에 불거졌다. 더욱이 변액보험 공시체제 개편이 금융 당국이 아니라 시민단체에 의해 촉발된 점은 감독의 한계도 드러냈다. 3년에 한 번씩 보험사를 점검하는 종합검사(정기검사)와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부분검사에 나서면서도 이런 문제점 하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보험사들은 변액보험 가입자들로부터 필요 이상으로 많은 운용보수를 거둬 6,800억원의 이상의 이득을 챙긴 것도 감사원을 통해 적발됐다. 보험사는 변액보험 가입자들로부터 받은 보험료 중 일부를 자산운용사에 맡기면서 운용보수를 자산운용사에 지급한다. 보험사들은 2009년 4월부터 2011년 말까지 가입자들로부터 총 9,000억여원의 운용보수를 받아 이 가운데 2,000억여원만 자산운용사에 지급하고 남은 돈은 모두 챙겼다. 뛰는 감독당국 위에 나는 금융계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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