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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서경금융전략포럼' 기조연설에 나선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표정은 다소 굳어 있었다. 일부의 낙관적인 전망과 달리 세계경제 침체 상황이 상당히 장기간 지속될 수 있는데다 세계 경제ㆍ금융환경의 패러다임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이에 적절히 적응하지 못할 경우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감이 묻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김 위원장은 금융 각계 최고경영자(CEO)들에게 '금융정책 패러다임'의 흐름을 파워포인트로 작성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금융회사 스스로 세계적인 큰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고 적응해야 한다는 의도였다.
김 위원장은 "한꺼번에 뵙기 힘든 금융계의 CEO가 모두 모인 이 자리에서 세계경제의 패러다임 변화와 향후 금융정책 방향 등에 대해 근본적인 말을 하고 싶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경제 환경 ▦세계 경제ㆍ금융 패러다임의 변화 ▦우리나라 금융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 기본설계 ▦향후 금융정책 방향 등 4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40여분간 강연에 나섰다.
◇세계경제 패러다임, "시장과 정부의 새로운 균형 모색"으로 변화=지난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발간으로 촉발된 고전자본주의부터 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로의 변화를 소개한 김 위원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본주의는 새로운 변화에 부닥쳤다고 진단했다. 양극화 확대, 실물과 금융 간의 괴리가 확대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현재는 금융규제 강화, 정부개입 확대 등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신자유주의가 높은 경제성장률을 실현하고 시장경제가 급속히 확대됐지만 사회양극화 확대, 경제위기 반복 등이 나타났다"면서 "그래서 요즘 등장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장과 정부 간의 새로운 균형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소위 지속가능한 성장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1973년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계기로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지나친 금융의 효율성 및 수익을 추구하면서 위기가 초래된 사례를 각국의 경우를 들어가면서 소개했다. 그는 "금융위기는 무수하게 반복됐다"면서 "유럽의 경우 1976년 영국의 정부부채 위기, 1990년 북유럽의 가계부채 위기, 2010년 남부유럽의 정부부채 위기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1991년 일본의 가계ㆍ기업부채 위기, 1997년 아시아 금융권부채 위기, 1998년 러시아의 정부부채 위기는 물론 아메리카 대륙과 남미에서도 무수한 위기가 반복됐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굵직한 사례만 뽑은 게 이 정도"라면서 "작은 위기까지 꼽으면 위기가 무수하게 반복됐다"고 덧붙였다. 과다부채에 따른 버블형성과 붕괴가 반복되면서 신자유주의를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는 불가피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 패러다임, "격심한 변화 예상"=세계경제의 패러다임 변화와 맞물려 금융 패러다임도 동시에 변화하고 있다는 게 김 위원장의 분석. 과거에는 최대한의 시장 자율성을 강조했지만 '질서와 규율을 전제로 한 시장 자율성'을 중시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는 게 골자다. 예컨대 과도한 레버리지 확대, 소수의 글로벌 투자은행에 이은 국제금융시장 지배, 금융과 실물 간 괴리 확대, 국제적 투자자본 성행, 금융약자보호에 소홀하던 기존의 질서는 이제 ▦은행 건전성 기준 강화 ▦대형 금융회사 규제 ▦실물경제 지원 강화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금융의 사회적 책임 수행 등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특히 "금융산업의 패러다임 역시 격심한 변화가 예상된다"고 힘을 줬다.
◇"금융프레임워크 근본적으로 바뀌어야"…패러다임 변화에 동참 못하면 도태=김 위원장은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금융정책은 세계경제의 변화에 대응해 빠른 속도로 맞춰졌다"고 말했다. 예컨대 1960년대의 정책금융시대에서부터 금융자율화(1980년대 전후)→금융개방화(1990년대 전후)→금융선진화(2000년대 전후)의 흐름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금융개방부터 국내금융정책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화했고 만들어왔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금융정책이나 금융산업도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만큼 금융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의 금융정책이 금융시장의 안정과 금융산업 발전에 중점을 둬왔다면 앞으로는 금융시장과 소비자의 문제 부문부터 중요한 패러다임 변화가 여기서 생길 것"이라면서 "금융시장 발전이라는 축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분야가 핵심사항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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