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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가장 바쁘게 산 사람들] 앨런 그린스펀 미FRB회장
입력1998-12-24 00:00:00
수정
1998.12.24 00:00:00
【뉴욕=김인영 특파원】 지난 9월4일 저녁, 캘리포니아의 명문 버클리대.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했다. 『세계 경제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데 미국 경제만 영향을 받지 않고 번영의 오아시스를 구가할 수는 없습니다.』수사학적인 말로 해석가들의 골탕을 먹이던 그린스펀은 이날 작심하고 직격탄을 쏘았다. 한마디로 미국 금리를 내리겠다는 말이었다.
아시아 통화위기가 러시아·중남미로 확산된 것은 국제금융 시스템의 심장 역할을 하는 선진국, 특히 미국에 돈이 너무 몰렸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들어 미국의 장기호황과 유럽의 경기회복으로 전세계의 유동성이 선진국에 집중됐다. 국제시장의 심장은 일방적으로 유동성을 흡수하는 역할만 하고 푸는 기능을 상실했던 것이다. 막대한 유동성이 몰려 번영을 구가했던 아시아는 유동성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붕괴했다. 러시아 모라토리엄은 세계 유동성 흐름의 동맥경화 현상을 심화시켰다.
그린스펀은 문제를 정확히 인식했다. 아시아 위기는 달러 강세와 이에 따른 엔화 약세, 국제 유동성의 아시아 이탈에서 초래됐다. 세계 금융시장의 심장이 피를 보내는 기능을 회생시키려면 미국이 금리인하에 앞장서고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의 공조체제를 형성해야 했다. 그는 약속대로 9월29일 미국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고 이에 앞서 일본은 재할인율을 인하했다.
한번의 금리인하로 중병이 든 심장을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10월15일 그린스펀은 또다시 비상벨을 눌렀다. 정기회의가 아닌데도 그는 FRB 간부들을 긴급 소집, 전격적으로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이때부터 심장에서는 조금씩 맥박이 뛰기 시작했다. 미국에 몰려 있던 돈이 아시아와 중남미로 조금씩 풀렸고 일본 엔화가 상승세로 돌아섰다.
11월17일 그린스펀은 세번째로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미국 중앙은행은 유럽 중앙은행들에 대해 금리인하 압력을 넣었다. 단일통화 창설을 앞두고 국가간 이해관계에 얽혀 있던 유럽 11개국도 마침내 그린스펀의 역할과 취지를 받아들여 일제히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은 일본을 몰아치기만 했지 아시아 위기의 원인인 달러강세 정책을 포기하겠다고 물러선 적이 한번도 없다.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자신의 잣대를 설정하고 인도네시아와 러시아에 따라오라고 매를 휘둘렀지만 국제 금융시스템의 심장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올해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로서는 국제 금융질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세계 중앙은행 총재로서의 역할을 다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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