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강판 주력" 3년만에 日 따라잡아<br>2002년 "무모한 도전" 우려 불구 고부가전략 선회<br>순수 국내기술로 생산설비 준공·강종 50여종 개발<br>4년만에 연산 650만톤체제… "세계최고 머지않다"
![](http://newsimg.sednews.com/2006/08/06/1HV5K4P1Z3_1.jpg) | 고통과 고난의 시기가 낳은 '선택' 은 포스코를 세계 최고의 자동차 강판 회사로 만들고 있다. 완성된 자동차 강판들이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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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2월.
이구택 포스코 회장(당시 사장)은 몇몇 고위 임원들과 함께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세계 곳곳에 나가있던 주요 임원들도 홍콩으로 속속 몰려들었다. 이날 홍콩회의를 통해 포스코 경영진들은 앞으로 자동차 강판을 포스코의 주력제품으로 키우겠다는 미래 성장전략을 전격 발표했다.
같은 시각. ‘홍콩 소식’을 접한 광양제철소 냉연사업부 직원들은 하루종일 술렁거렸다. 차 강판을 전략제품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수십년간 노하우를 쌓은 일본 신일철과 JFE스틸의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을 순식간에 뛰어넘겠다는 일종의 도발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포스코 경영진이 가졌던 위기감의 한 단면은 그로부터 3년 후인 2005년 다음과 같이 드러냈다.
“중국의 경우 열연ㆍ후판은 이미 설비능력이 공급을 초과했으며, 냉연ㆍ도금도 2년 후면 비슷한 상황이 될 것이다. 중국은 이미 순수입국에서 순수출국으로 됐으며,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급 제품을 많이 사용하는 한국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앞으로의 경영환경은 포스포가 과거 30년 동안 겪어보지 못한 큰 어려움이 될 것이다.” (2005년 9월24일 임원 및 부ㆍ실장 대상 CEO 특강에서)
◇강한 견제, 더 강한 돌파의지= 그로부터 만 1년의 기간동안 포스코는 연산 170만장 규모의 TWB설비를 구축, 오스트리아의 푀스트알피네사의 기술지원을 통해 ‘맞춤식 재단 용접강판’을 생산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몰두했다.
시험 가동을 끝내고 본격 양산에 들어간 것은 2003년 4월. 국내 자동차메이커는 물론 중국의 하얼빈기창, 상하이항공발동기 등으로부터 포스코에게 자동차 강판을 공급해달라는 러브콜이 쇄도했다.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곧 바로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이 새롭게 주목하기 시작한 용융아연도금강판 생산에 들어가기 위해 관련 설비를 도입키로 결정했습니다.”
오인환 자동차 강판 판매실장은 당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고 술회했다.
당시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은 기존의 냉연강판이나 전기아연도금강판을 줄이는 대신 초고장력 용융아연도금강판(GA강판) 수요를 크게 늘리는 추세였다.
해당 기술이 없던 포스코는 그 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던 신일철에게 정중하게 자문을 구했다. 까마득히 먼 발치에서 따라오는 후발주자에게 커다란 경계심을 갖을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일철의 반응은 냉담 그 자체였다. 심지어 초고장력 CGL설비 견학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자칫 CGL설비를 추가 도입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몰린 것.
결국 ‘스스로의 기술로 개발하자’는 결론을 내린 후 그 해 5월 냉연생산부를 주축으로 자동차 강판 개발을 위한 ‘메가 Y팀’을 출범시켰다. 이후 2년이 넘는 연구개발 작업 끝에 마침내 2005년 9월 순수 국내기술로 No.5 CGL 설비를 준공했다.
신일철과 JFE에게 수십년 뒤쳐졌던 기술을 불과 3년만에 따라잡은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이옥산 광양제철소 냉연생산부장은 “강종 개발에 매달리느라 일주일 넘게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직원이 부지기수였다”며 “꿈 속에서 ‘첨단 강종을 개발할 수 있는 청사진’을 만들었다는 직원들도 나타날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포스코는 이후 불과 2년의 기간 동안 50여종 이상의 자동차용 강종을 개발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차 강판 머지않았다= 지난 6월30일에는 자체 노하우와 기술력을 집대성시킨 ‘No.6 CGL 설비’를 가동시켰다. 자동차 강판시장에 진입하기로 결정한 후 4년여만에 연산 650만톤 규모의 생산체제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것이다.
모든 임직원들이 똘똘 뭉쳐 이룩한 성과는 하나하나씩 값진 결실로 나타났다. 지난 2002년 230만톤에 머물렀던 차 강판 판매규모는 ▦2003년 270만톤 ▦2004년 350만톤 ▦2005년 440만톤으로 불어났다. TWB 역시 3년만에 14배의 성장을 달성했다. 특히 지난 2005년 자동차용 강판 부문 매출액만도 3조917억원에 달해 차 강판 설비 투자 금액(1조9,000억원)를 훨씬 웃돌고 있다.
김지용 자동차강판 수출 실장은 “자동차 강판은 품질의 안정성과 내구성이 중요한 만큼 자동차사와 철강사간의 신뢰가 중요하다”며 “이 같은 진입장벽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설비 투자와 판매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철강시황의 변곡점에서 제때에 적합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11월 말 뜻하지 않은 귀한 손님을 맞았다.
지난 2005년초 자동차 강판 부족으로 포스코에 급하게 SOS를 쳤던 닛산차의 카를로스 곤 회장이 일행을 이끌고 방문한 것. 곤 회장은 이 회장과 만나 포스코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고 향후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이 회장은 이날 곤 회장과의 회동을 마치고 광양제철소 No.5 CGL을 찾아 현장직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포스코가 노력만 한다면 그 어떤 불황이 닥쳐도 자동차 강판 생산라인을 풀가동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자동차 강판을 생산하는 회사로 등극할 날이 멀지 않았다.”
● 당시 경영환경은
조강능력 1위서 4위로 추락…"규모로는 한계" 특단책 시급
포스코가 일본이라는 난적과의 험난한 경쟁을 뻔히 보면서도 고부가가치강 위주로 시장전략을 전격 선회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이구택 회장의 이야기를 좀더 들어본다.
“지난 2002년 조강 4,300만톤 규모의 아르셀로 등장에 이어 올해(2005년) 조강 6,300만톤 능력의 미탈스틸이 (추가합병을 통해) 공식 출범한다. 이러한 흐름은 세계 시장에 새로운 경쟁방식을 만들어 내고있으며, 우리와 공급사, 고객사와의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2005년 1월 회장 신년사에서)
실제로 지난 99년까지 세계 1위의 조강능력을 자랑하던 포스코는 2002년 들어 아르셀로와 미탈스틸, 신일철에 이어 4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유상부 전 포스코 회장은 회고를 통해 그 당시를 ‘고통과 고난의 시기’라고 평가했을 정도.
오인환 자동차 강판 판매실장은 “지난 98년부터 2002년까지 국내 철강업계는 수요부진에 따른 가격 하락과 미국 등지에서 일고 있는 M&A를 통한 규모의 경제 달성,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는 중국의 설비 확장에 맞닥뜨렸다”며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경영난에 봉착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포스코가 ‘자동차강판 올인’을 선언한 것은 당시의 글로벌 경영환경을 둘러볼 때 더 이상 ‘규모의 경쟁력’을 주창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인식이 짙게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사족이지만 포스코는 2002년 홍콩 회의에 앞서 그해 1월말 회사명을 포항제철에서 포스코(POSCO)로 변경했다. 34년만의 개명작업에는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절박감도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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