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만화영화 '드레곤볼'에서는 전투를 즐기는 샤이어인과 프리더 일당이 눈에 착용하는 필수 장비 '스카우터'가 있다. 디스플레이로 활용되는 렌즈를 통해 상대방의 전투력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알려준다. 스카우터가 없으면 상대방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전투에 패배하기도 한다. 일명 만능안경 '스마트글라스'다.
#영화 '아이언맨'에서는 전세계를 날아다니며 악당들을 물리치는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나온다. 그는 홀로그램 프로젝터가 부착된 헤드 업 디스플레이(HUD) 헬멧을 쓰고 '자비스'라는 음성 인식 프로그램이 제공해주는 정보를 받으며 키보드 없이도 파워 슈트를 조종한다. '웨어러블 로봇(wearable robot)'이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하던 '웨어러블 기기(입는 컴퓨터)'가 현실화되고 있다. 특히 발열 문제와 배터리 성능, 단말기 소형화 등 웨어러블 기기의 한계가 점차 개선되면서 차세대 스마트 기기 블루오션으로 각광 받기 시작했다. 영국 시장조사기관 IMS리서치는 오는 2016년까지 웨어러블 기기 시장이 약 60억달러(약 7조원)에 이르고 지난해 1,400만대 수준이던 관련 시장은 2016년 1억7,000만대로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권기덕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웨어러블 테크(입는 기술)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며 "글로벌 IT 기업들도 미래 혁신 분야로 웨어러블 기기를 꼽고 시장 진출을 확대해나가고 있고 이로 인해 스마트 기기의 새로운 트렌드도 휴대에서 착용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 기기 '휴대에서 착용으로'=글로벌 IT 기업들은 웨어러블 기기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스마트워치를,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는 스마트글라스 개발을 마무리하고 시장공략에 나설 채비를 갖췄다. 삼성전자는 다음달 4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되는 '언팩 행사'에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스마트워치 '갤럭시기어'를 공개한다. 애플은 100여명의 개발자를 투입해 시계 타입의 스마트워치인 '아이워치'를 개발하고 있으며 내년 초에 제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관련 특허도 79종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의 경우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안경형 스마트 기기인 구글 글라스를 선보이고 내년 중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에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소니는 지난해 스마트워치를 발표한 바 있고 MS도 시계와 안경 형태의 스마트 기기를 개발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목할 대목은 스마트 기기가 손으로 들고 다니던 휴대에서 두 손이 자유로운 착용으로 트렌드가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명 웨어러블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웨어러블 테크, 어디까지 왔나=웨어러블 테크는 정보처리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웨어러블 기기(컴퓨터)와 로봇 기술을 핵심으로 하는 웨어러블 로봇 두 가지 방향으로 산업화가 진행 중이다. 웨어러블 기기의 경우 미국 바디미디어사가 개발한 스마트밴드는 팔뚝 윗부분에 착용해 사용자의 온도나 열을 감지하고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또 미국 자이버너트사가 내놓은 스마트 방탄복은 내부에 소형 PC가 설치돼 일선 경찰관이나 병사들의 안전과 작전 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 바이보메트릭스사가 개발한 '라이프셔츠(Lifeshirts)'는 이미 미국 내 주요 의과대학에서 사용할 정도로 환자의 땀과 심장 박동 등 주요 생체 데이터를 수집ㆍ분석해 의사들에게 실시간으로 처방이나 치료시기를 알려 준다.
웨어러블 로봇은 웨어러블 기기보다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기술이다. 웨어러블 기기는 정보처리 기능이 강조되지만 웨어러블 로봇은 각종 신체 기능을 증폭시키는 제어와 구동 시스템이 중요하다. 웨어러블 로봇이 적용되는 주요 분야는 노인과 장애인의 이동성, 생활 향상을 추구하는 의료, 고된 노동을 보조하는 업종, 군수 부문 등이다. 현재는 의료 쪽에 대한 투자가 가장 활발하다. 일본 혼다사의 워킹 보조기기(Walking assist device)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웨어러블 로봇으로 작은 힘으로도 쉽게 걸을 수 있게 해준다. 사고 후 회복과정 또는 신체가 불편한 노인들의 거동에 활용되거나 불편한 자세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산업현장에는 이미 상용화됐다.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중공업이 선박의 도장 및 용접 작업에 근로자의 작업부하를 경감시키기 위해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사는 헐크(HULC)라는 로봇슈트를 개발했다. 슈트를 입은 병사는 90㎏의 군장을 메고도 최고 시속 16㎞의 속도로 행군할 수 있다. 김옥남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신체에 착용해 인간의 능력을 증강시키는 기술로 웨어러블 테크가 부상하고 있다"며 "이미 의료 분야와 산업 현장, 군수장비 등에서 다양하게 시도되면서 미래의 삶을 바꿔가고 있다"고 말했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가 성공 관건=전문가들은 웨어러블 시장이 발전하기 위한 핵심 기술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flexible display·휘어지는 화면)를 꼽는다. 가벼우면서 자유롭게 휘는 화면이 없으면 몸에 입는 컴퓨터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진화에 따라 웨어러블 기기가 다양한 형태도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충격에도 부서지지 않는 '강도'다. 그 다음은 휘어지고 구부러지고(Curved) 종이처럼 접을 수 있는(Foldable) 단계다. 그래야 시계처럼 손목에 감거나 안경에 부착하는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 두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1.5~2㎜ 수준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의 두께를 0.6㎜까지 얇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기술이 상용화될 때 옷처럼 입는 컴퓨터까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것보다 어려운 장벽은 양산 기술을 확보하는 문제다. 세계적인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도 두께와 강도, 탄성 등 요구되는 수준이 워낙 높은 탓에 수율(완성품 비율)이 턱없이 낮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관계자는 "차세대 스마트기기 블루오션으로 각광 받는 웨어러블 기기의 경쟁력은 강도와 탄성이 강한 아주 얇은 두께의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이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입거나 몸에 걸치는 형태의 모든 IT 기기를 뜻한다. 기존 PC나 스마트폰처럼 특정한 형태로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몸에 걸치고 다닐 수 있는 시계나 안경, 허리띠 등의 형태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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