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서 애플이 삼성을 무릎 꿇린 '운명의날' 24일(현지시간). 공교롭게도 팀 쿡(사진)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정식 임명된 지 딱 1년 되는 날이었다. 포스트 잡스(스티브 잡스 사후) 1년 동안 쿡은 애플의 전성기를 연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삼성전자 등과의 전방위적인 특허 전쟁에 몰두한 탓에 잡스 시절 애플의 절대가치인 혁신은 이어가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팀 쿡 체제 1년 동안 애플의 특허 전쟁은 잡스 생전보다 확대됐다. 삼성전자와는 영국ㆍ독일ㆍ호주ㆍ일본 등 9개국에서 특허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구글에 인수된 모토로라 모빌리티, 대만의 HTC도 애플의 소송전에 휘말려들었다. 애플과는 태생이 다르지만 점차 사업영역이 비슷해지고 있는 구글ㆍ아마존도 조만간 특허 전쟁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하지만 전세계적인 특허 전쟁이 애플에 독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국 온라인 정보기술(IT) 매체인 E위크는 "애플은 기술 방어에만 급급한 나머지 혁신을 멈춰버린 애슈턴테이트와 닮은꼴"이라며 "내부적으로 혁신보다는 소송에 지나치게 관심을 쏟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슈턴테이트는 지난 1980년대 마이크로소프트(MS), 로터스 등과 함께 개인용컴퓨터(PC)의 혁명기를 이끌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애슈턴테이트는 지금의 애플과 마찬가지로 자사와 경쟁사 제품 간에 약간의 유사점이라도 발견되면 곧장 소송전을 벌이곤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소송에 전력을 기울인데다 기반 기술이 결국 애슈턴테이트의 것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나면서 다른 업체에 인수됐다.
쿡이 삼성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마당에 애플이 당장 특허 전쟁을 그만둘 가능성은 낮다. 삼성의 승승장구를 방치하기에는 시장이 너무 커진 탓이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올해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2,076억달러(약 236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IDC에 따르면 지난 2ㆍ4분기 시장에 공급된 전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중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44%에 달했다. 애플로서는 안드로이드 진영의 선두주자인 삼성을 견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삼성 소송전 이후 쿡에 대한 평가는 이르면 다음달 공개가 예상되는 아이폰5 등 신제품에 따라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 특유의 독창성과 혁신이 담겨 있느냐가 관건이다. 사실상 쿡의 첫 신작이 아이폰4까지 휴대폰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했던 아이폰 시리즈의 명성을 지속할시킬지 여부가 애플의 미래를 판가름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팀 쿡 체제하의 애플은 여전히 전성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20일 애플의 시가총액은 6,230억달러로 엑손모빌을 제치고 세계 1위에 등극했고 잡스가 사망한 후 출시된 아이폰4S와 뉴 아이패드도 이전 모델과 마찬가지로 전세계적인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특히 아이패드는 태블릿PC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고수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IDC에 따르면 지난 2ㆍ4분기에 전세계에서 팔린 태블릿PC 2,500만대 중 아이패드 시리즈 판매량은 1,700만대에 달한다. 아이패드 판매가 부진했던 한국 시장에서는 이 같은 열풍을 쉽사리 체감하기 힘들지만 교육 시장을 중심으로 아이패드 시장이 나날이 넓어지고 있다는 게 IDC의 분석이다.
이 밖에 애플의 높은 영업이익률과 애플 '팬보이(Fanboy)'의 충성도도 여전하다. 4월 미국 주간지 '타임'은 취임 8개월째인 쿡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리스트에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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