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정면대응에 나선다고?” 지난 2004년 11월 2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마쓰시타 본사는 하루종일 부산했다. 하루전 마쓰시타가 LG전자 PDP 기술의 일부가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도쿄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뜻밖에도 LG전자가 하루만에 강경대응을 천명한 것. 마쓰시타로선 원천기술이 빈약했던 LG전자가 항상 그래왔듯이 곧 소송무마를 위한 거액을 지불할 것으로 낙관했었는데 LG전자가 ‘실력대결’을 선언한 셈이다. 그로부터 5개월 후인 지난해 4월. 마쓰시타는 LG전자와 ‘크로스 라이센스’(Cross-Licenseㆍ특허공유)에 합의했다. 크로스 라이센스란 마쓰시타와 LG전자 양사가 자체 보유한 PDP 특허기술을 공유하겠다는 것으로, 원천 기술력이 대등한 업체끼리 윈윈전략으로 주로 맺는다. ◇원천기술 확보가 1등 열쇠= 세계 PDP 지존인 마쓰시타는 지금까지 LG전자보다 월등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해 왔다. 이번 크로스 라이센스 체결은 한마디로 LG전자의 원천 기술력이 동등한 수준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PDP사업 진출 15년 만이다. LG전자는 지난 2004년 일본 특허청에서 발행한 ‘특허출원기술동향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마쓰시타와의 특허력은 동등한 수준으로 분석되고 있다. LG전자 고위 관계자는 “일본과 10년 기술격차를 극복하고 당당히 기술독립에 완전 성공한 것”이라며 “다양한 특허출원을 통해 PDP 특허에 관한 지적재산권 분쟁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며 의지를 내보였다. LG전자는 지금까지 5,000여건의 PDP 특허를 국내외 출원했으며, 매월 100여건 이상의 특허를 계속 출원중이다. 일부 경쟁업체들은 이제 노골적으로 “타도! LG”를 외칠 정도가 됐다. ◇세계를 점령한 LG기술= LG전자는 지난해 2월 중순 미국의 한 청문회에 참석했다. 미국 디지털 TV 정책에 대해 단독으로 미 의회에 조언하기 위해서다. LG전자 관계자는 “미 의회가 자국 업체도 아닌, 그것도 마쓰시타 같은 강력한 쟁쟁한 업체를 놔두고 LG전자의 자문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디지털 TV 리더십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가 전세계 PDP 업계를 대표해 미 의회에 참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LG전자가 지난 2004년 개발한 디지털TV 수신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5세대 수신 칩은 일본 등에 역수출 되고 있다. 앞으로 미국, 캐나다, 한국, 멕시코 등 북미방식의 방송 규격을 채택한 나라에서 디지털TV를 판매하려면 모든 TV업체는 LG전자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LG전자가 100%의 지분을 소유한 미국 제니스사가 원천기술을 확보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일본의 도시바, 샤프 등 일본의 유수 TV제조업체 등과 로열티 협상을 완료했다. 진행중인 50여 개 TV업체와의 협상이 마무리되면 연간 벌어들이는 로열티만 최소 1억달러를 넘을 전망이다. ◇과감한 적기 투자도 장점= 윤상한 LG전자 DD(디지털디스플레이)사업본부장(부사장)은 “LG전자보다 10년 먼저 시작한 일본의 PDP 사업을 제치고 1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은 기술혁신과 적기 투자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지난 2002년까지 10년동안 장기불황으로 PDP 투자를 머뭇거렸다. 하지만 LG전자 경영진들은 디지털 시대에는 틀림없이 PDP TV 시대가 올 것으로 예감하고, 내부적으로 신속하게 투자결정을 내렸다. 이에 LG전자는 매년 평균 2,000억원을 주기적으로 투자해 세계 1위 업체로의 위상을 확고히 하게 됐다. LG전자는 PDP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금까지 약 1조원을 적기 투자해 마쓰시타 등 다른 PDP업체 보다 시장리더십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1ㆍ4분기 PDP 패널 판매량에서 PDP 사업이후 처음으로 세계 1위를 오른 이후 상반기까지도 이 기록을 지키고 있다. ● PDP·LCD "쌍끌이" 필립스LCD등 계열사와 디스플레이 5각벨트 구축
LCD분야 비중 점차 늘려 글로벌시장 공략 공동전선 "이제부터 PDPㆍLCD 두마리 토끼를 잡도록 합시다"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은 최근 임원들 앞에서 PDP와 LCD 가운데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도록 마케팅이나 홍보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이른바 '50대50'론.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이 PDP와 LCD로 양분돼 치열하게 시장선점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 상황에서 PDP는 LG전자가, LCD는 계열사인 LG필립스LCD가 주력 생산하다보니 내부적으로 협력보다는 경쟁심리가 더 크게 작용해 왔다. 특히 TV세트제조도 함께 하는 LG전자가 PDP중심의 개발에 주력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LCD를 찬밥 취급했다. 그러나 김 부회장의 이번 발언으로 PDP 뿐만 아니라 LCD 비중도 지금보다 한껏 높아질 전망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식구끼리 소모적인 경쟁을 하기 보다는 '코피티션'(Copetitionㆍ경쟁적 협력관계)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김 부회장의 생각이다. LG전자 고위 관계자는 "세계 디스플레이 톱 달성을 위해 상호 시장 보완적인 측면이 강한 PDP와 LCD가 협력할 것은 하고, 경쟁할 것은 하는 '경쟁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는 올해부터 PDP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형화되고 있는 LCD 분야에서도 세계 시장을 장악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본격화 할 방침이다. 지난 4월말 완공된 파주LCD단지와 중국 난징, 폴란드 브로츠와프 등은 LG의 야심찬 구상의 핵심기지. LG전자ㆍLG필립스LCDㆍLG화학ㆍLG이노텍ㆍLG마이크론 등 5개 계열사는 디스플레이사업을 각 계열사의 미래성장동력으로 설정하고 5각 벨트를 구축,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하고 있다. 특히 디스플레이 5각벨트는 글로벌 시장 공략에 경쟁사보다 한발 앞설 수 있는 발판이 되고 있다. 패널부품의 1차적인 전공정을 첨단 설비를 갖춘 국내에서 완료하고, 조립공정인 후공정을 해외현지에서 수행하며 생산ㆍ판매의 현지화로 원가경쟁력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LG는 앞으로도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생산기지를 설립할 때 LG전자를 중심으로 나머지 4개 계열사가 공동 전선을 구축해 진출한다는 구상을 세워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PDP와 LCD의 쌍끌이 전략이 장단점은 있지만, PDP에 올인하고 있는 일본의 마쓰시타나 LCD에만 주력하고 있는 AUO 등 대만업체 등에 비해서는 글로벌 경쟁력에서 앞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 日역습·대만 맹추격 "안심 못한다" 투자주도형 경쟁전략 올인은 위험
전후방업체 공조, 기술혁신 전력을 "여전히 안심할 수 없다." LG전자 등 국내 업체들이 PDPㆍLCD 등 세계 평판 디스플레이 시장을 석권하고 있지만 일본 업체들의 재탈환 의지, 대만 업체들의 발빠른 추격 등으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PDP 시장은 LG전자와 삼성SDI, 마쓰시타 등 빅3로 재편돼 있지만, 최근 들어 마쓰시타가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마쓰시타는 지난 2ㆍ4분기 74만장의 PDP 패널을 판매, 시장점유율 30.9%로 1위에 올랐다. 올 1분기 1위였던 LG전자는 71만장(29.9%)을 판매해 2위로 떨어졌고, 삼성SDI는 56만장으로 3위에 그쳤다. 지난 7월 중순에는 마쓰시타가 세계 최대 103인치 PDP TV를 출시하는 등 대평 평판TV 시장 경쟁을 주도해 가는 양상이다. 마쓰시타는 또 내년에 현재 PDP TV 가격보다 40% 인하시킨 인치당 5,000엔 수준으로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LCD 역시 국내 업체들의 수익성이 대만ㆍ중국 등의 경쟁국 업체들에 비해 뒤지기 시작했다. LCD TV 세트업체로는 일본의 소니가 삼성ㆍLG를 멀찌감치 따돌리면서 전세계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반면 대만ㆍ중국 업체들은 무리한 투자는 자제하면서 국내 업체들의 투자 상황과 시장 추이에 맞춰 성장위주의 사업을 전개, 실적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정덕 LG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조기 설비투자를 통해 시장을 주도해 왔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추격하는 경쟁업체들을 고려하면 투자 중심의 경쟁전략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투자 주도형 리더십을 재고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LG전자 등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세계 최강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혁신주도'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 연구원은 "일본 업체들이 디스플레이 패널 부문에서 LG전자 등 국내 업체에 주도권을 빼앗겼으면서도 다시 국내 업체들을 위협하게 된 것은 부품, 소재, 장비부문 등 기초체력을 강화하고, 혁신적인 기술을 확보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며 "현재 디스플레이 강국의 위상은 대부분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낸 성과지만 전후방 산업, 특히 후방산업의 든든한 지원없이는 절름발이 성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디스플레이 기업뿐만 아니라 전후방 협력업체의 공조가 절실하다"며 "독자적인 제조공정, 이를 지원하는 차별화된 소재, 장비개발 등 기업별로 블랙박스화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정상범 팀장(산업부 차장)·이규진·이진우·김성수·김현수·김홍길·민병권·김상용기자 ss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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