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박근혜 정부의 친중(親中) 행보는 국제 역학관계나 통상 측면에서 미묘한 파장을 낳았다. '아세안공동체'를 강조한 박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듯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조기에 타결되고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지역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참여가 현실화했다. 일각에서는 세계 경제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이 최대교역국인 중국 쪽으로 더 다가간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13억 중국 내수시장을 끌어안는 것이 긴요한 과제이기는 하지만 최대 동맹국인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에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다소 의아한 상황이었다. 우리나라의 TPP 참여 선언은 주요2개국(G2) 사이에서 다시 균형추를 맞추기 위한 의도도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입장료 요구 큰 부담=TPP 참여 초읽기 상황에서 손익계산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오는 4월 정부의 TPP 공식 참여 선언과 관련해 다양한 경제적 효과가 기대되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 뒤늦게 합류해 잃게 되는 것도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TPP에 합류하더라도 쌀 시장 개방과 쇠고기·돼지고기·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부담을 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미국이 선선히 참여를 받아줄지 의문인데다 다른 회원국과의 통상 역학관계도 신중히 따져봐야 할 문제여서 TPP가 축배가 될지 독이 든 성배가 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TPP 자체가 한미 FTA 내용을 기초로 한 측면이 크다"며 "가입시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봤다.
그럼에도 미국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한국이 TPP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겠지만 미국의 통행료 요구부터 수용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내걸 가능성이 높다. 무료입장은 안 되며 최소한의 입장료는 받아야겠다는 미국 측의 압력성 발언은 공공연하다. 한미 FTA 미국 측 협상대표였던 웬디 커틀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가 '한국이 성의를 표시해야 한다'는 언급을 한 것도 단적인 사례다.
미국은 원산지 표시와 쇠고기·돼지고기 시장 개방폭 확대, 자동차 분야 비관세 장벽 해소, 쌀 시장 개방 확대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그동안 한미 FTA 발효로 정작 미국 기업이 FTA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불만을 제기해왔다. 한 국책연구소의 연구위원은 "미국은 중국 견제 차원에서라도 한국 가입을 원하겠지만 한미 FTA 이행조건을 참여 과정에 반드시 연계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멕시코, 교역 역학관계 '복잡'=일본과 멕시코도 변수다. 산업구조가 비슷해 세계 수출시장에서 치열한 경합관계인 일본과는 산업별 희비가 엇갈린다. 농산물은 새로운 시장 진출의 기회를 갖겠지만 소재·부품은 큰 폭으로 수입이 증가해 조금씩 완화되던 대일무역 적자폭이 다시 심화될 수 있다. 엔저로 기운을 차린 제조업 분야도 세계시장에서 불리한 구조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일 적자 심화 우려 때문에 지난해 TPP 합류에 주저했는데 우리나라와 일본이 같은 위치가 되면 그동안 FTA로 누렸던 선점효과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멕시코는 자동차와 섬유처럼 경쟁력을 갖는 우리 제품의 대멕시코 수출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하는 실정이다. 관세 문턱이 낮아지는 것에 대해 우리나라는 일본을 신경 써야 하고 멕시코는 한국을 경계하고 있는 셈이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과 멕시코는 우리와 양자 간 FTA를 하는 것과 같은 차원이어서 한국 합류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GDP 1.8% 증가 효과, 분야별 실익 엇갈려=일반적으로 TPP 참여의 경제적 효과는 한일 FTA 체결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관점이 우세하다. 12개국 중에서 교역 규모가 큰 국가로는 일본과 멕시코와 FTA가 체결돼 있지 않다. 산업부가 국회에 제출한 연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발효 후 10년 후에 실질 국민총생산(GDP)이 1.7~1.8% 증가할 것으로 관측됐다. 보고서는 TPP 영향분석을 위해 현시비교우위지수(Revealed Comparative Advantage·RCA)라는 지표를 활용했는데 RCA가 1보다 크면 TPP 참여국들보다 비교우위이며 그 미만이면 비교열위라는 의미다. 한국의 제조업 RCA 중 일반기계는 0.81로 일본(1.77)과 격차가 벌어졌고 비금속광물은 0.28로 일본(1.18)에 한참 뒤떨어졌다. 자동차는 1.39로 비교우위인 것으로 분석됐지만 일본(2.24)에는 밀렸다. 정부 관계자는 "현 관세율과 산업별 경쟁력 등을 고려할 때 제조업의 대일 적자 규모는 5억~6억달러 늘어날 것"이라면서도 "전체적인 경제적 효과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