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은행들이 동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중국은 물론 베트남ㆍ인도네시아ㆍ캄보디아 등지의 현지은행을 인수해 ‘아시아 리딩뱅크’로 성장한다는 전략을 내세우고 내년부터 해외은행 인수합병(M&A)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은행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국내 시장에서의 영업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해외에서 새로운 시장의 돌파구를 찾고자 함이며, 원화 강세 기조를 활용해 해외의 저가 자산(은행)을 사는 게 유리하다는 계산을 깔고 있다. 아울러 금융업에서도 제조업 부문에서처럼 글로벌 플레이어가 나와야 한다는 사회적 주문도 수용하자는 것이다.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최근 홍콩우리투자은행 개소식에서 “베트남ㆍ홍콩ㆍ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지역 금융시장 진출을 통해 아시아 대표 은행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동남아시아와 홍콩ㆍ상하이, 그리고 중국의 동북3성(省)을 있는 동아시아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해외진출에 나선다는 전략을 밝혔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외환은행 인수가 무산된 후에도 “현지기업과 현지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독자적인 해외진출 전략 모델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는 지난 5월 중국에서 ‘베이징 구상’을 발표하고 “오는 2011년까지 동북아를 영업거점으로 하는 아시아 리딩뱅크로 도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해외진출에 따른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조직정비와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동창 금융연구원 초빙 연구위원은 “은행들이 해외진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는 있지만 전문인력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전담조직이 미비하고 해외시장 정보나 진출경험이 부족하다”며 “해외상황을 항시 모니터하고 현지은행을 인수하고 관리할 수 있는 조직을 은행 내에 갖춘 후 M&A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진출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경영여건 마련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컨설팅 전문업체인 앤플랫폼의 강영재 부사장은 “해외진출은 최소 5년에서 10년 정도는 꾸준히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경영진이 단기간 내에 수익이 안 나는 해외투자를 결정하기 힘들다”며 “능력 있는 경영진이 장기적으로 일을 추진해나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는 성공적인 해외진출이 불가능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은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해외 은행 인수를 위한 M&A는 적절할 때 신속한 의사결정이 중요한데 현재처럼 금융감독위원회와 재정경제부를 거쳐야 하는 이중규제 밑에서는 쉽지 않다”며 “급변하는 세상에 맞게 정부 규제도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기관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정보센터 설립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박성준 보스턴컨설팅그룹 부사장은 “90년대 동유럽 시장이 개방됐을 때 국내 은행들은 아무런 진출을 못했다. 이번 아시아 시장 개방은 국내 은행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마지막 호기가 될 수 있다”며 “국내 금융기관의 해외진출을 돕는 지원센터를 만드는 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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