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低)수익 늪에 빠진 철강·석유화학 업계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시장을 둘러싼 국내외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관세 '만리장벽'이 허물어질 경우 큰 폭의 매출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23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중 FTA 실무협상단은 오는 26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13차 교섭을 벌일 예정이다. 지난 7월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박근혜 대통령과 연내 FTA 협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 이번 협상에서는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겠냐는 전망이 제기된다.
현재 양국의 최대 관건은 양허 품목 리스트다. 한국은 고추 등 농산물을 초민감 품목으로 분류하고 있고 중국은 철강과 석화 분야를 품에 끌어 안고 있다. FTA를 맺더라도 이 품목들에 대해서는 현행 관세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국이 민감 품목에 대해 서로 한 발짝도 양보를 하지 않을 경우 한중 FTA가 '깡통 협정' 수준에 머물 수 있어 어떤 식으로든 양보안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중국이 철강·석화 부분에서 일정 수준의 관세 인하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관세 체계가 불공평한 철강 업계의 경우 중국 관세 인하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이 철강을 수입할 때 물리는 관세는 대부분 '제로(0)'이지만 중국의 철강 수입 관세는 강종에 따라 3~10%에 달해 가뜩이나 큰 가격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8월말 기준 대(對) 중국 철강 수출물량은 총 319만3,000톤으로 같은 기간 수입물량(883만4,000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만성적인 무역 적자를 겪고 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관세를 인하해도 이미 상당한 가격 격차가 있어 당장 중국시장을 공략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중국 정부가 자의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수출환급세만 안정적으로 운영돼도 국내 시장의 혼란을 단기적으로 막을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환급세는 중국 정부가 수출 품목에 대해 일단 세금을 물렸다가 다시 환급해주는 제도인데, 시장 상황에 따라 환급폭을 조정해 시장을 흔드는 주범으로 꼽힌다.
석화 제품 역시 관세 철폐로 인한 가격 경쟁력 확보가 예상된다. 현재 중국은 석유화학제품 중 프로필렌ㆍ에틸렌ㆍ벤젠ㆍ파라자일렌 등에 2%, 폴리프로필렌ㆍ폴리에틸렌 등에 5.5~6.5%의 수입 관세를 물리고 있다. 산업연구원 등에 따르면 이 관세가 폐지될 경우 올해 기준으로 15억 달러 이상의 무역수지가 개선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최근 중국 시장에서 기존 북미 기업들뿐만 아니라 토종 기업, 중동 기업들까지 각축전을 벌이고 있어 앞으로의 효과는 더 클 전망이다.
최근까지 우리나라는 중국 석유화학제품 수입에서 1위 국가였으나 중국 내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올해 상반기의 대중(對中) 수출 실적은 전년보다 20% 이상 줄어든 상태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관세 철폐는 한국산 석유화학제품 수출에 숨통을 틔워주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중국이 우리 산업계가 원하는 대로 양보안을 내놓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중국의 철강·화학과 농산물을 맞바꾸는 모양새가 될 경우 정치적 민감도가 커 협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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