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22일 정부가 주택거래 활성화대책을 통해 부동산 취득세를 절반으로 인하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은 직후 부동산시장은 큰 혼란에 휩싸였다. 시장에서 기다렸던 취득세 인하 방침이 발표됐지만 정작 적용시기는 물론 시행 여부조차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발표 날짜부터 소급적용하겠다' '4월 이후부터나 적용된다' '야당의 반대로 안 될 것' 등 다양한 소문이 나돌면서 잔금납부를 앞둔 아파트 입주자들은 입주를 미루고 발을 동동 굴렀다.
정책이라는 게 시행착오를 거쳐 궤도에 올라서는 것이 정석인데 이 같은 취득세 인하 시기 논란이 올해 판박이로 다시 진행되고 있다. 정부가 또 한번 취득세를 절반 인하하기로 했지만 시행시기는 '국회 상임위원회 통과일' 이후라는 애매한 기준을 내놓으면서 시장의 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분양주택에 대한 양도세 면제도 시행시기는 물론 적용 대상을 놓고 형평성 논란에 휩싸였다. 근로소득세액 원천징수를 감면하는 문제도 '조삼모사(朝三暮四)' 논란에 이어 정부의 불충분한 설명이 도마 위에 올랐다. 가전제품에 대한 개별소비세 감면은 막상 혜택을 받는 제품이 거의 없어 소비자들의 원성이 높다. 자동차에 집중되다 보니 특혜 논란까지 벌어지는 형국이다. 이쯤 되니 추가경정예산을 대신해 '창의적으로' 내놓았다는 대책이 사실상 '불통 대책'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오락가락…부실대책 1년 만에 되풀이하는 정부=정부는 취득세 감면 시기와 관련해 법 개정을 해줘야 하는 국회의 눈치를 안 볼 수는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13일 "예전에 취득세 인하를 하면서 소급 시점을 못박아 발표했다가 국회로부터 혼쭐났다"며 "정부 입장에서는 최대한 빨리 대책을 실시하고 싶지만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입장을 감안한다고 해도 불과 지난해에 벌어졌던 혼선을 올해 똑같이 답습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정치권과의 조율이나 국민 편의를 우선하기보다는 대책이 새어나가지 않기 위해 보안을 더 중히 여기다 보니 매번 대책 발표 이후에 이 같은 혼선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근로소득세 원천징수액 인하를 통해 쌈짓돈을 마련해주겠다는 정부의 역발상 대책도 논란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발표 직후 이 대책은 줄곧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지만 연말정산 환급액이 줄어드는 것을 알아챈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것 아니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1~8월 근로소득세 초과징수분을 목돈이 필요한 추석 전에 한꺼번에 돌려주겠다던 정부의 발표도 사실상 와전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8월까지 소급분에 대해 9월에 한꺼번에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9월부터 낼 근로소득세에서 월별로 차감되는 것이라고 이날 공식 해명했다. 하지만 대책 발표일 당시에는 이 같은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아 쓸데없는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창의적이라는 대책…밀실에 불통 대책으로=미분양주택에 대한 양도세 면제 혜택 역시 취득세와 마찬가지로 시행시기를 알 수 없어 건설업계의 혼선이 커지고 있다. 담당부처 실무자가 "적용기준 날짜가 법 시행일이 될지, 대책 발표일이 될지, 아니면 상임위 통과일이 될지 알 수 없다"고 대놓고 말할 정도다.
이 문제가 민감한 이유는 대책 시행시기에 따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미분양 물량이 달라져서다. 정부는 대책 시행시기 직전까지 발생한 미분양 물량에 대해서만 세 감면 혜택을 줄 방침인데 이렇게 되면 지금 현재 분양하고 있는 아파트들은 과연 혜택의 대상이 되는지, 안 되는지 판가름을 할 수가 없다. 양도세 면제 발표시기와 시행시기 사이에 낀 분양주택들이 엉뚱한 피해를 보는 것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분양 세 감면은 반드시 대책 발표일부터 명확하게 적용시점을 적시했어야 했다"며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얘기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소비진작을 위해 획기적으로 내놓은 가전제품에 대한 개소세 인하 대책 역시 생색내기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 가전제품 대부분은 이미 에너지효율이 높아 개소개가 부과되지 않고 정부가 내놓은 개소세 감면 기준에 해당되는 국내 가전제품은 전체의 2% 내외에 불과하다.
민간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마른 수건을 짜내다시피 하며 대책을 내놓은 고충은 이해하지만 민감한 세금감면 문제에서 지난해와 똑같은 혼란을 되풀이하고 일부 대책을 과대포장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은 비판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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