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수출업체들이 급격히 무너지는 데는 원화강세(환율하락)에 따른 가격경쟁력 약화가 가장 큰 요인이다. 실제 무역협회가 지난 1988년부터 2005년까지 18년간을 조사한 결과 환율이 10% 하락할 때마다 기업들의 3% 가량은 수출을 포기한 것으로 파악됐다. 심각한 것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중소업체들 마저 최근의 환율하락에 대해 ‘감당하기 힘들다’며, 수출 포기를 강하게 시사하고 있는 점이다. 무역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지난 90년대 일본이 엔화 강세로 수출경쟁력을 급속히 상실당하는 모습이 연상될 정도”라며 “당시 일본도 대기업들은 새로운 교역환경에 버텼지만 중견, 중소기업들은 줄도산을 했으며, 이후 10년 넘는 장기불황에서 고통을 받아야 했다”고 진단한다. ◇“수출 포기하는 업체 속출한다”= ㈜한국야금은 기계산업의 원조인 독일에 절삭공구를 수출할 정도로 기술력을 갖춘 중소업체. 지난 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매출호조를 보여 직원들에게 특별성과급을 줄 정도였다. 이 회사는 지금 연초 세웠던 사업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지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임계학 ㈜한국야금 사장은 “올 환율을 1,000원으로 예측했으나 하락폭이 커 당초 사업계획 달성을 위해 노력은 하겠지만 힘들다는 판단이 든다”고 우려했다. 지난해까지는 월 매출이 35억원 정도를 유지했지만 올해는 환율 하락분이 원화매출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면서 1억7,000만원 가량 줄어들었다. 임 사장은 “주변 수출업체들 가운데 국내 원자재를 사용해 수출하는 기업들이 받는 타격은 상당하고, 실제 수출을 포기하는 기업들도 속출하고 있다”며 “그래도 원자재를 수입가공해 재수출하는 우리 같은 회사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전체 수출 둔화로 이어질 것”= 환율하락 등 경영환경 악화로 국내 중소업체들의 생산공장 해외이전도 급증하고 있다. 중소업체의 해외투자 규모는 지난 2001년 8억8,000만달러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며 지난 해 24억달러에 달했다. 중소업체의 해외투자가 전체 해외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 2001년 17.1%에서 지난 해 38.1%로 급증했다. 문제는 기업들의 생산기지 해외이전이 곧 바로 국내 산업공동화를 심화시켰을뿐 아니라 이들과 연계돼 있던 중소 수출업체들의 생존기반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의 무역환경 악화에 가장 먼저 포기하는 곳은 수출 100만달러 미만의 소규모 업체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출 버팀목 역할을 해 온 중소업체들이 몰락할 경우 전체 수출둔화는 물론 국내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다음 순서는 중견 수출업체, 이들의 위기에도 주목하라”= 환율하락에 따른 부정적 영향은 과거보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전통적인 수출품목인 자동차부품, 기계, 섬유산업 등은 여전히 민감하다. KOTRA 관계자는 “섬유, 기계 등의 품목은 정부차원의 전략적 R&D투자 및 민간투자유도를 통한 고부가가치 상품 개발 유도, 원자재 조달지원 등 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중소규모 무역업체의 위기뿐 아니라 중견 수출업체들의 위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들이 버티지 못할 경우 국내 수출 경쟁력이 급속도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무역협회 내부 조사에 따르면 최근과 같은 960원대 환율수준이 계속될 경우 수출업체의 92.2%가 수출감소를 예상하고 있고, 2ㆍ4분기 수출채산성 EBSI는 50.4로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조사됐다. EBSI는 100을 기준으로 100이상이면 긍정 전망을, 100이하면 부정적인 전망을 나타낸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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