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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43주년] (강한 증시 강한 경제) 외국인 “한국정부ㆍ기업ㆍ시장 모두 불투명”
입력2003-08-03 00:00:00
수정
2003.08.03 00:00:00
이학인 기자
“한국은 정부ㆍ기업ㆍ시장 모두 불투명하다. 오늘 좋은 기업이라도 내일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주식 가치를 디스카운트할 수 밖에 없다.”
A증권의 K 애널리스트가 지난달 중순 홍콩에 주재하고 있는 다국적 금융기업을 상대로 한국주식을 세일즈하면서 한 유럽계 펀드메니저로부터 들은 말이다. K씨는 지난 몇 달간 국내증시가 상승세를 보였고 민감한 북핵문제에 대한 내성도 길러졌다고 판단,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현지를 찾았었다. 하지만, 다국적 금융기관의 펀드매니저ㆍ애널리스트들의 한국주식에 대한 평가는 별로 달라진게 없었다.
증권가에서는 주식시장이 양적ㆍ질적 측면에서 선진국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참여정부가 새로운 국가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는 구호로만 끝날 것이란 시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외국인들의 `바이 코리아(Buy Korea)`열풍도 이면에는 좋은 물건을 제값주고 사서 오래 간직하기 보다는 싸게 사서 적당히 가지고 있다가 팔자는 심리가 압도적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바겐세일` 증시로는 국민소득 2만달러 도약의 첨병인 기업들에게 저비용의 생산투자자금을 조달해주고 개인투자자(가계)에 적절한 재산증식의 기회를 제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마이크로소프트 팔면 한국기업 다 산다=흔히 한국의 주식시장을 얘기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수식어중 하나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한국 증시가 세계 주요시장에 비해 저평가 돼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외국인들이 이를 적절히 이용해 막대한 차익을 올린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거래소와 코스닥시장의 모든 기업의 시가총액 합계가 미국의 마이크로 소프트 1개 기업의 시가총액과 비슷하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시가총액은 2,825억달러로 환율을 1,200원을 적용할 경우 339조원에 이른다. 이는 국내에 상장ㆍ등록된 1,564개사의 시가총액 345조2,070억원에 불가 6조원 적은 수준이다. 또 아시아 주요국의 증시 시가총액은 국내총생산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한국의 경우 47%에 불과하며 세계주요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를 비교해보더라도 지난 6월말 현재 코스피(KOSPI)의 PER는 9.60배로 다우30의 28.58배, 항생의 14.83배등에 비해 현격히 낮다.
◇삼성전자가 미국기업이면 주가 100만원 넘어=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단순히 주식 저평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경제와 정치ㆍ사회 등 전반에 대한 외국인들의 평가가 반영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테렌스 림 골드만삭스 전무는 “한국시장의 저평가는 낮은 기업이익률, 저배당, 정책 불확실성 등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라며 “기업ㆍ정부가 꾸준히 노력해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89년 종합주가지수가 처음으로 1,000포인트를 돌파했을 때 삼성전자 주가가 4만원이었다. 14년이 지난 현재 삼성전자의 주가는 40만원대에 올라섰지만, 종합주가지수는 아직 700포인트에 머물고 있다. 인텔 등과 비교할 때 만약 삼성전자가 미국 기업이었다면 주가는 100만원이 넘을 것이란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정의석 굿모닝신한증권 부장은 “삼성전자의 주가 하나만 놓고 본다면 우리의 주가지수는 벌써 2,000포인트 이상돼야 한다”며 “그러나 전체적인 면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은 그 때에 비해 별로 나아진 게 없고 이를 주가지수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선순환 단초는 증시=우리경제의 현안중의 하나가 자금의 선순환이다. 400조에 가까운 자금이 시중에 떠돌고 있지만, 이를 기업자금화하는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돈맥경화`현상을 타개할 수 있는 돌파구로 증시를 포함한, 직접금융시장의 활성화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히 국가전략적 입장에서 증권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비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강창희 PCA투신운용 투자교육연구소장은 “미국기업들의 직접금융 비중은 80~90%로 기업이 설립되면서부터 시작해 성숙단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자금조달을 증시에 의존하고 있다”며 “우리도 차근차근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 회사의 경영상태를 솔직히 공개하는 경영투명화와 함께 주주가치를 보호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 유지와 함께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해 경쟁력 있는 시장이 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영호 증권연구원 부원장은 “우리의 직접금융시장의 틀은 미국식이지만, 내용은 경쟁을 촉발하기보다 경쟁을 억누르고 있다”며 “할 수 있는 것만 규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안되는 네거티브식 규제를 필요한 일부분만 제한하는 포지티브방식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학인기자 leej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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