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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곳곳에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이 같은 꿀벌의 실종 요인으로 유전자 조작 작물, 농약, 병원균, 전자기파, 지구온난화 등 여러 가지가 거론되고 있지만 딱 부러진 해답을 찾기는 힘든 상태다. 다만 꿀벌 임대사업, 즉 가루받이를 통한 수익을 위해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이동양봉이 꿀벌의 생활력 전반을 약화시키고 이 와중에 유전자 조작 작물 등 현대문명의 폐해가 겹치면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만일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열매를 사용해 만든 모든 식품을 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벌집 텅비는 군집붕괴현상
북미등 지구촌 곳곳서 잇따라
이동양봉·GMO 등 원인 지적
열매로 만든 식품 먹지 못하는
인간에 상상초월 재앙 올수도 최근 북미와 유럽의 양봉농가에서 잇따라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벌집 안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면 그나마 덜 이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벌집 안에는 꿀벌의 사체도 없다. 여왕벌과 유충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게다가 꿀벌의 주식인 꿀과 꽃가루도 그대로 있었다. 일반적으로 꿀벌은 유충이 모두 성체로 변하기 전에는 벌집을 버리지 않는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꿀벌의 갑작스러운 실종은 미스터리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꿀벌의 실종을 군집붕괴현상이라고 부른다. 유전자 조작 작물에 의한 영향 가설 일부 과학자들은 이 같은 꿀벌의 군집붕괴현상이 고당도 옥수수 시럽을 제공한 데 따른 영양실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고당도 옥수수 시럽은 인간이 꿀과 꽃가루를 가져가는 대신 넣어주는 인공음식. 가격도 진짜 꿀의 10분의1에 불과해 양봉농가에서 애용되고 있다. 하지만 꿀벌에게 있어 꿀과 고당도 옥수수 시럽의 영양분은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꿀의 70% 이상은 포도당과 과당 등 단당류로 이뤄졌지만 이외에도 많은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다. 비타민ㆍ미네랄ㆍ단백질이 그것. 또한 칼슘ㆍ인ㆍ철분ㆍ아연ㆍ구리 등의 무기질도 있다. 반면 고당도 옥수수 시럽은 55%의 과당과 45%의 포도당으로만 구성돼 있다. 만일 고당도 옥수수 시럽이 유전자 조작 옥수수로 만들어졌을 경우에는 꿀벌에게 이중으로 타격을 주게 된다. 유전자 조작 작물에는 흙에 사는 세균인 바실루스 투린기엔시스의 유전자가 들어있는데 이 유전자는 살충효과가 있어 꿀벌에게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당도 옥수수 시럽이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이라면 고당도 옥수수 시럽을 먹인 벌집에서만 군집붕괴현상이 일어나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벌집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살충제 등 농약에 의한 영향 가설 최근 들어 농토는 수확을 늘리고 병충해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가짓수의 농약이 뿌려진 결과 각종 농약 칵테일로 범벅이 된 상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가루받이하기 위해 트럭에 벌집을 싣고 여기저기를 오가는 일이 흔한데 이 때 꿀벌은 여러 지역을 왕래하면서 다양한 농약을 접하게 된다. 만일 꿀벌이 섭취하는 먹이가 농약으로 오염됐다면 꿀보다는 꽃가루일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꽃가루는 꿀벌의 몸 밖에 매달려 운반되고 꿀은 꿀벌의 몸속에 넣어져 운반된다. 이 때문에 꿀에 치사량의 농약이 들었다면 꿀벌은 벌집까지 가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리고 인공적인 것이든, 자연적인 것이든 독극물의 효력은 꿀벌의 성충보다 유충에게 더욱 확실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군집붕괴현상에서는 독극물에 약하고 게다가 성충보다 꽃가루를 섭취하는 비율이 높은 유충이 오히려 남아 있는 상태가 나타난다. 농약에 따른 군집붕괴현상 가설에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병원균에 의한 군집붕괴현상 가설 꿀벌의 군집붕괴현상 원인으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등의 병원균을 꼽는 연구자들도 있다. 응애, 즉 꿀벌에 기생하는 진드기의 일종이 전염시킨 각종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꿀벌의 면역체계를 약화시켜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 일반적으로 꿀벌의 군집이 병으로 죽어가기 시작하면 근처의 다른 건강한 군집에서 꿀을 빼앗으러 온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건강한 군집으로 병이 옮겨가는데 군집붕괴현상에서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더구나 군집붕괴현상을 일으킨 모든 꿀벌의 군집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요 지표 병원균이 없다. 따라서 특정 병원균이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은 오류의 소지가 있는 셈이다. 전자기파나 지구온난화도 꿀벌의 실종 원인으로 거론되는데 그다지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꿀벌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나무만 보고 숲을 놓쳤기 때문에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꿀벌의 군집붕괴현상 원인을 탐구해왔던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전문 분야에서 본 시각으로만 문제에 접근했다. 그 결과 훨씬 포괄적이고 진실에 가까운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얘기다. 유전자 조작 작물, 농약, 병원균, 전자기파, 지구온난화 가운데 병원균을 제외하면 나머지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모두 인공적인 것이다. 즉 꿀벌의 군집붕괴현상은 현대문명의 여러 가지 폐해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현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동양봉, 꿀벌 실종에 중요 역할 일반적으로 꽃은 꽃가루를 받아 과일을 맺는데 바람을 통해 꽃가루를 전파하는 풍매(風媒)보다 꿀벌 등 수분 매개곤충에게 꿀을 주는 대신 그들의 몸에 꽃가루를 묻혀 전파하는 충매(蟲媒)가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특히 기업 형태의 대규모 농업을 추구하는 미국 농업의 특성상 꿀벌 임대사업은 없어서는 안 될 위치에 있다. 이에 따라 양봉업자들은 꿀보다 꿀벌 임대사업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정도다. 그리고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도 이 같은 꿀벌 임대사업이 실시되고 있다. 미국의 양봉업자들이 꿀벌 임대사업을 위해 벌집을 가지고 이동하는 거리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문제는 이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꿀벌이 엄청난 장거리 이동을 소화해낼 수 없다는 것. 일반적으로 꿀벌은 정해진 곳에 둥지를 지어놓고 주변의 일정한 범위 내에서만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정착생활을 하는 꿀벌에게 1년 내내 장거리 이동으로 혹사시키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실제 꿀벌의 체질에 맞지 않는 끊임없는 이동은 체력ㆍ생산력ㆍ면역능력 등 꿀벌의 생활력 전반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꿀벌을 만나게 됨에 따라 타지 꿀벌이 가진 풍토병ㆍ바이러스ㆍ응애도 옮게 된다. 여러 가지 꽃의 꿀이나 꽃가루를 먹지 못하고 한 가지 작물의 꿀과 꽃가루만 먹게 되는 것도 문제다. 더욱이 각종 농약은 꿀벌의 체내로 고스란히 들어가게 된다. 열매 사용해 만든 식품 사라질 수도 꿀벌 군집붕괴현상을 어떤 한 가지 요인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많은 모순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요인으로 묶으라면 꿀벌에게 너무나 큰 짐을 지운 인간일 것이다. 꿀벌의 실종은 인간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몬드ㆍ블루베리ㆍ체리ㆍ멜론ㆍ사과ㆍ커피ㆍ초콜릿 등 충매 방식으로 생긴 열매를 사용해 만든 모든 식품이 식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수 있다. 이 같은 식품은 사람들이 먹는 전체 식품의 80%를 차지한다. 심지어는 쇠고기ㆍ돼지고기 그리고 닭고기를 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들은 모두 충매 방식으로 번식한 풀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꿀벌 군집붕괴현상의 구체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밝힐 수는 없을지 몰라도 큰 틀에서 보면 그 해답과 인간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유한한 자연은 자연의 방식대로 이용해야 하며 그 자연에서 무한한 이윤을 착취하는 행위를 중단하지 않으면 크나큰 화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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