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국제금융시장 흐름에 긴장하고 있던 지난 2월, 한국은 새로 취임한 '세계 경제 대통령'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으로부터 뜻밖의 칭찬을 들었다. 하원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 경제가 15개 신흥국 가운데 취약성이 가장 낮다"며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다렸다는 듯 "우리 경제는 확 달라졌다. 미 연준이나 외신도 한결같이 한국의 체력, 위기대응 능력을 차별적이라 진단한다"고 맞받아쳤다.
한국은 정말 '확 달라졌을까'. 평가는 부정적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3년째 22위(2013년 기준)다.
그나마 거시지표가 나아진 덕에 자리를 지켰지 기업경영·교육인프라 등 시스템은 그야말로 후진적이다. 기업 경영활동은 50위, 노사관계 생산성은 56위로 60개국 중 최하위권이다. 교사 1인당 초등학생 수는 51위, 아파트 임대료는 52위로 사회인프라도 빠듯하다. 살찌고 덩치는 커졌는데 체력은 허약하기 짝이 없는 셈이다.
◇지쳐가는 '외화내빈 대한민국'=성장 지상주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금융위기 여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무역액은 3연 연속 1조달러를 넘어 최대 규모, 최대 흑자라는 화려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이 버젓이 자리잡았고 한류열풍이 전세계를 강타할 만큼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다.
하지만 대한민국 내부를 들여다보면 한계에 봉착한 모습이다.
기득권 세력과 난립한 규제가 철옹성처럼 버티면서 사회 전반의 유연성은 현저히 떨어졌고 빈부격차가 심화하면서 소외계층의 박탈감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성장과 분배를 놓고 이분법적 이념공방을 벌이면서 사회갈등은 증폭되고 혼란의 장기화에 따라 피로감만 누적되고 있다.
그나마 자랑거리였던 경제에서도 적잖은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다. 산업화시대부터 이어져온 독과점체제로 인해 대기업 쏠림 현상은 과도해졌고 이와 반대로 중소기업과 영세집단은 빈사상태에 빠졌다. 선진국이 지방주권시대로 달려나가고 있는데 우리나라 지방들은 자생적 발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취약하기 짝이 없다. 1,021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는 경제 활력을 끌어내리고 결혼기피와 저출산은 고령화 속도만 재촉하고 있다. 민간대학의 한 교수는 "삼성이 언제까지나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느냐"며 "서둘러 내리막길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더 큰 문제는 돌파구를 찾을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제 밥그릇 지키는 데만 골몰하고 정부 정책은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 사이 사회안전망 없이 가라앉는 취약계층은 이제 한국사회의 미래를 압도하는 문제로 번져가고 있다.
◇민간 중심의 새로운 '3두 시스템' 필요=과거 산업화 시대를 이끈 3각축은 관료-정치권-재벌이었다.
이들은 고도의 압축성장을 주도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전면 개방되면서 계획경제를 이끌었던 기존 3각축은 사실상 붕괴됐다. 현실과 따로 도는 아이디어, 떨어진 집행력에 관료 파워는 현저히 약화됐고 재벌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상당 부분 도태됐다. 그나마 정치권이 보신하고 있지만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기존 3각축을 대체하고 새로운 국가시스템을 만들어나갈 '3두(頭)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권위와 규제가 아닌 다양성과 소통으로 풍부한 아이디어를 수용해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정부보다 민간이 정보에 밝아진 시대인데 더 이상 정부가 민간에 지시를 내릴 수는 없다"며 "기업대표가 중심이 된 가운데 정부와 학계가 현장에 직접 가서 같이 문제를 푸는 '3두 시스템'으로 각 부문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력보다 턱없이 취약한 시스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도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특히 국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교육시스템 개혁을 무엇보다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은 지식기반 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출발점인 동시에 고용과 복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에서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제도는 지난 1995년 '5·31 교육개혁' 조치 발표 이후 20년간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과거 산업화시대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혁신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육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제2의 교육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산업화 시대와 달리 평생교육이 요구되고 고용패턴도 장기고용에서 단기고용으로 변하면서 그 사이사이를 복지가 메워야 시스템이 유연하게 돌아가게 바뀌었다"며 "교육문제부터 풀어서 교육-노동-복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21세기에 맞게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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