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자 한동안 푸대접을 받던 건설·화학 등 업황 부진 회사채에 기관자금이 몰리고 있다. 은행 예금금리가 1%대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이들 업종의 회사채가 연 3~5% 금리를 제시하자 기관들이 앞다퉈 지갑을 열고 있는 것. 다만 전문가들은 업황 부진 회사채에 대한 기관들의 투자심리가 전반적으로 개선됐다기보다는 금리 영향이 더 크다며 회사채 시장 양극화 현상이 완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SK건설(A)이 2년 만기 500억원, 3년 만기 800억원 등 총 1,3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수요예측을 진행한 결과 총 1,300억원의 기관자금이 들어왔다. 2년물은 300억원만 들어와 미매각이 발생했지만 3년물에 1,000억원의 주문이 들어왔다. 이에 따라 SK건설은 3년물 발행액을 200억원 늘려 총 1,500억원치를 발행했다. 지난 3월 수요예측 흥행을 장담할 수 없어 회사채 발행을 포기하고 차입금을 보유 현금으로 상환했던 점을 생각하면 6개월여 만에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기관이 몰린 것은 금리 때문이다. SK건설의 경우 회사채 2년물을 연 4.8%, 3년물을 5.2%에 발행했다. 현재 A등급 회사채 민평수익률이 2년물의 경우 3.02%, 3년물은 3.37%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금리다.
한화케미칼(009830)(A+)의 회사채 수요예측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지난달 29일 진행한 수요예측 결과 3년 만기 1,000억원 발행에 1,400억원의 기관자금이 들어왔다. 지난해 2월 3년물 1,500억원의 회사채 발행에서 기관 수요예측 참여가 단 한 건도 없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화학 업황 불황, 태양광 투자로 인한 차입금 우려에도 불구하고 발행 금리가 기관의 지갑을 열게 했다는 분석이다. 한화케미칼의 발행금리는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3% 초반대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AA등급 3년 만기 회사채 민평금리가 2% 중반대에 형성돼 있어 3%대의 금리도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은기 NH농협증권 연구원은 "건설이나 화학 업종이 전반적으로 불황을 겪고 있지만 만기가 길지 않으면서 고금리를 제시하는 회사채를 발행할 경우에 기관투자가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며 "저금리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대기업 그룹 계열의 건설·화학 업종 회사채에 대한 투자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화학 등 경기취약 업종에 대한 회사채에도 수요자금이 몰리면서 회사채 발행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9월22일부터 26일 진행된 기업들의 회사채 수요예측에는 1조600억원의 자금이 몰려들었다. 전주 자금(5,900억원)의 2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다만 일부 건설과 화학 업체로 기관자금이 몰린다고 해서 회사채 시장 양극화 현상이 완화될 조짐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채권 애널리스트는 "저금리 상황에서 기관투자가들이 고수익 투자처를 찾다 보니 금리가 높은 편인 건설·화학 업종 회사채를 찾은 것이지 이들 업종에 대한 전반적인 투자심리가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비우량 건설사 회사채는 계속 시장의 외면을 받아 양극화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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