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신문이 13일 단독으로 입수한 정부의 연금소득세제 개편방향 보고서(이하 개편안)는 연금가입자에 대한 세부담을 줄여주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담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세제 혜택을 받고 있는 퇴직금 일시 수령자에 대한 역차별의 설움을 풀어주겠다는 취지다.
현재 연금가입자는 상대적으로 세부담이 무겁다. 연금소득은 연간 60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부터 사업, 근로, 이자, 배당, 기타 소득 등과 함께 합산돼 종합소득으로 간주돼 상대적으로 높은 누진세율을 적용 받는다.
예를 들어 한 해에 연금소득 1,200만원(과표 기준), 사업소득 3,500만원(〃)을 얻은 경우라면 연금소득만 따로 떼어 해당 과표에 해당하는 6%의 낮은 세율이 적용되는 게 아니라 사업소득과 합쳐 4,700만원의 종합소득으로 간주돼 해당 과표에 해당하는 24%의 세율을 적용 받는다. 반면 똑같은 사업소득을 얻는 사람이 1,200만원을 퇴직금으로 일시 수령했다면 해당 금액은 사업소득에 합산되지 않고 분류 과세돼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을 적용 받는다.
더구나 퇴직연금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은 연간 400만원 한도로 제한된 반면 퇴직금 일시수령시 기본적으로 40%의 높은 급여비례공제를 받고 이와 별도로 직장 근무기간에 따라 높아지는 근속연수공제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적용세율을 정할 때에도 퇴직일시금 수령자는 근속연수만큼을 과표(과세대상 소득에서 각종 공제 등을 뺀 금액)를 근속연수로 나눈 값을 기준으로 하는 일명 '연분연승'방식을 적용 받으므로 한결 낮은 세율을 적용 받게 된다. 조세정책 스스로가 잘못된 연금 수령 방식을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일시 수령 선호의 틀을 깬다=지금의 조세 체계만 놓고 보면 아무리 정부가 안정적 노후생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퇴직연금에 가입하라고 국민들을 설득해도 연금보다는 퇴직금 일시 수령을 선호하는 경우가 월등히 많았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이번 개편안도 "근속연수가 길수록 연금소득이 퇴직소득보다 세부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근속연수가 길고 소득이 높은 계층일수록 퇴직일시금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조세연구원을 통해 개편안을 마련하면서 퇴직연금 등 연금소득에 대한 세제혜택을 높여주기로 한 것이다.
특히 현행 '600만원 이하'에 불과한 연금소득 분류과세 기준을 대폭 높이기로 방침을 정함으로써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소하는 첫 발을 내디뎠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아울러 급여를 장기간에 나눠 받을수록 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것도 개편안의 백미로 꼽힌다.
◇절반의 수술…소득공제 한도 상향 미흡=다만 이 같은 개선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은퇴자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는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소득공제 한도를 파격적으로 높이지 못했다는 게 걸림돌이다.
한국연금학회는 지난 2일 세미나를 열고 '100세 시대를 위한 연금시장 활성화 방안'보고서를 통해 현행 400만원에 불과한 퇴직연금 소득공제 한도를 800만원까지 높일 것을 제언했다. 또한 10년 이상에서부터 종신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연금을 받는 연금 수령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소득공제(공제율 연금소득의 10~40%)를 추가하는 일명 '장기연금수령 특별공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개편안에서는 해당 사안들이 담기지 않았다. 이는 현재의 연금가입자들이 400만원 공제한도조차 다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금저축납입자들의 평균 납입금액은 220만9,000원으로 집계돼 1인당 400만원 공제한도가 전혀 부족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금융전문가들은 현행 공제한도가 낮아 연금 가입열기가 시들하기 때문에 공제한도를 다 못 채우는 것일 뿐 공제한도를 높이면 오히려 가입열기가 늘어 공제한도를 상당히 채우게 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개편안은 또 장기연금수령 특별공제제도에 대해 사실상 고소득 연금소득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제도라고 분석하면서 "이들(고소득자)에 대해서는 재정부담까지 져가면서 노후보장을 위한 유인책을 제공할 필요성이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여성고령자ㆍ기업 퇴직 재원 활용 위한 방안들 빠져=학계와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여성 고령자 인구가 증가하고 있어 남편 사별 후 생계대책을 위한 '배우자 잔여연금 수령시 상속세 면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해당 대책 역시 개편안에선 반영되지 않았다. 이는 기본적으로 정부가 세수감소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기업이 퇴직급여충당금을 사내에 쌓아두기보다는 자발적으로 회사 외부의 기관에 적립해 퇴직금 재원의 안정성을 높이고 퇴직연금 가입을 독려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은데 이 역시 개편안에서는 빠졌다.
학계는 관련 대안으로 '퇴직급여충당급 손금산입한도 축소ㆍ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현재는 해당 충당금의 35%를 손비로 인정해 법인세 부담을 덜어주고 있는데 이 비율을 축소하고 단계적으로 없애면 기업이 법인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전액 손비로 인정 받는 사외적립을 선호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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