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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원내사령탑 김덕룡>
입력2004-05-19 11:32:57
수정
2004.05.19 11:32:57
17대 국회 첫 제1야당 원내사령탑에 오른 김덕룡(金德龍) 의원은 6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개혁성이 뚜렷한 인물로 평가된다.
탄핵폭풍과 변화의 바람이 거셌던 지난 4.15 총선에서도 거뜬하게 5선 고지에 등정한데다 이번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김문수(金文洙) 안택수(安澤秀) 의원의 세대교체론 공세를 극복할 수 있던 것도 이런 그의 성향과 무관치 않다.
그는 70년 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의 공보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YS 정부 시절 여당 사무총장과 정무장관을 역임하면서 정권 실세의 위치에 올랐지만 민정계나 보수파들과는 항상 일정 거리를 둬 왔다.
그러나 이런 한때의 화려했던 정치 역정과는 달리 `YS 이후'에는 `영원한 비주류'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정치적으로는 양지에 서 본 적이 거의 없다.
YS정권 시절 최형우(崔炯佑)씨와 함께 민주계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지만 이회창(李會昌) 전총재 시절에는 호남(전북 익산) 출신이라는 현실정치의 벽이 그를 비주류로 내몬 셈이었다.
한나라당의 97년 대선 패배후 세차례나 당권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쓴잔을 맛본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 당 안팎의 분석이다.
물론 중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지나치게 신중한 자세 때문에 결단력있는 의사결정을 하지 못해 타이밍을 놓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측은 "원칙과 신의를 중시해온 행보"라고 주장한다.
비주류의 길을 걸어온 그가 원내대표 경선에 뛰어들게 된데 대해 측근들은 `당에 대한 마지막 봉사'라는 말로 설명한다. 97년 이회창(李會昌) 조 순(趙 淳)씨와함께 한나라당을 창당한 주역인 만큼 현재의 여야구도에서 당과 정치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란 것이다.
김 신임 원내대표는 19일 "노무현(盧武鉉) 정권과 열린우리당의 불안정한 개혁,급진적 개혁을 막고 안정속의 개혁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시대적 과제에 대한 해결사역에 당선자들이 공감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인 김열자(金悅子.63)씨와 2남.
▲전북 익산 ▲경복고 ▲서울대 사회학과 수료 ▲통일민주당 대변인 ▲민자당사무총장 ▲정무1장관 ▲한나라당 부총재 ▲한나라당 뉴밀레니엄위원회 위원장 ▲민추협 공동의장 ▲13, 14, 15, 16, 17대 의원
(서울=연합뉴스) 최이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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