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선 산업은행] KIF 역할 명확히 규정해야 신설 금융공기업, 중소기업 지원효과 높이려면 마스터플랜 필요… 기존 보증기관과 대출·보증 기능 교통정리도…정부, 민영화 시한 법에 명시하고 경영 손 떼야 산업은행 민영화는 정체성을 상실한 국책은행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고민에서 비롯됐다. 이명박 정부는 ‘산은을 팔고 그 돈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 ‘국책은행 민영화’와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목표를 세운 셈이다. 중소기업 육성 문제를 시장에 맡길 경우 제대로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는 ‘시장실패’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코리아인베스트먼트펀드(KIF)라는 새로운 금융공기업을 만들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산은 민영화 성공 요건으로 ‘기한 내 100% 매각 달성’과 ‘신설 공기업(KIF)의 명확한 역할정립’을 꼽는다. 특히 KIF의 역할을 정립하기 앞서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연태훈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KIF만 만드는 것은 중소기업 지원제도를 하나 더 보탰다는 것 외에는 별 효과가 없다”며 “중소기업 지원 효과를 높이려면 중기지원 전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린 후 KIF의 역할을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산은의 매각시한을 법에 명시하고 지금부터 준비해 주어진 시간 내에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기지원, 마스터플랜 세워라=정부는 정권 초부터 ‘중기지원 강화’ 의지를 표명했다. KIF 설립은 여러 방안 중 하나다. KIF 설립만으로는 시장실패ㆍ정부실패가 해결될 가능성은 낮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중소기업을 살리겠다고 각종 대책과 기금 등을 내놓았지만 막상 손에 잡히는 것은 없다”며 “각종 대책이 쏟아지면서 복잡해지기만 했지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KIF 설립 이전에 중소기업 지원체계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중기지원에 대한 큰 그림, 마스터플랜을 제시한 후 KIF의 역할정립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KIF에 중소기업 지원 외에 기업 구조조정, 금융시장 안전판, 지역개발 금융, 보증업무, 수출입금융 등 다른 업무를 더하기 위해서는 시장실패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실패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시장실패에 대해 정부가 무작정 개입하는 것은 금물”이라며 “공기업 민영화 성공 여부는 성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사후책임을 묻는 관행을 정착시키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KIF와 기존 보증기관 교통정리 필요=현재 중기지원 관련 기관은 10곳이 넘는다. 지원자금 규모도 큰 기관만 60조원을 웃돈다. 중소기업청은 2조5,644억원 규모의 정책자금을 총괄한다. 신용보증기금은 올해 28조원의 신용보증을 지원할 예정이고 기술신용보증기금은 기술혁신기업에 10조5,000억원의 보증을 제공한다. 또 산은은 지난해 9조원가량을 중소기업에 대출해줬고 수출입은행은 올해 5조5,700억원 대출과 9,300억원을 보증할 예정이다. KIF가 가세하면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중소기업 금융지원의 두 축인 ‘대출’과 ‘보증’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는 재점검을 요구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신보ㆍ기보와 KIF가 제공하는 보증과 대출은 방식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은 만큼 조율이 필요하다”며 “대출과 보증을 별개로 가는 것과 합치는 것의 장단점을 충분히 비교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영화 시한을 법에 명시, 정부 경영에서 손 떼야=인수합병(M&A) 전문가들은 산은 매각과 관련해 “정부가 모든 준비를 마친 후 가장 비싸게 팔겠다고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민영화 계획을 확정한 후에는 새로 임명한 최고경영자(CEO)에게 모든 것을 위임해야 한다”며 “정부에 맡기면 매각시한이 계속 늦춰질 수 있는 만큼 법에 시한을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도 정책투자은행 민영화 시점을 오는 2015년으로 법에 명시했다. 또 정부가 금융공기업의 경영에서 손을 떼는 게 중요하다. 정부 개입은 ▦시장왜곡과 비효율 ▦금융공기업의 개혁 차질 등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경영에 대한 최종 책임과 영업에 대한 감독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게 우리의 누적된 경험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