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6년 9월19일, 버지니아의 중심지 제임스타운이 불탔다. 베이컨(Nathaniel Baconㆍ당시 29세)이 이끄는 개척민의 무장봉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식민지 최초의 봉기인 '베이컨의 반란'이 발생한 표면적인 이유는 총독부의 인디언 정책. 버지니아 인구가 6,000명에서 4만명 이상으로 늘어나는 25년 동안 총독으로 군림한 버클리(당시 71세)의 인디언과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서부개척 억제 방침과 새로운 땅이 필요했던 중하층 개척민들의 이해가 엇갈렸다. 마침 주산품인 담배 가격이 떨어지고 영국왕 찰스2세가 가신들에게 제멋대로 하사한 영토를 되찾기 위한 사절단 파견과 로비 비용으로 세금까지 크게 올랐던 상황. 총독과 사돈이었던 벤저민이 인디언 전쟁을 위한 민병대를 조직해 버지니아는 내전 분위기에 휩싸였다. 베이컨이 봉기에 나선 것은 1676년 5월. 순식간에 500명으로 불어난 무장 개척민들은 버지니아 의회를 주도하며 세금인하와 인디언과의 대규모 전쟁을 결의하고 '버지니아 인민의 권리'를 선포했다. 두 세력의 갈등은 벤저민 민병대의 제임스타운 점령과 방화, 총독의 탈출로 이어졌다. 반란군은 영국 해군이 당도하기 전에 베저민이 이질로 급사하며 세력이 약해져 결국 총독이 21명을 교수형에 처하면서 반란도 끝났다. 조지 워싱턴의 증조부가 진압군으로 참전한 반란의 막판에는 흑인 80명 등 100여명이 저항했을 뿐이다. 독립선언보다 꼭 100년 전에 발생한 이 반란은 미국 경제ㆍ사회 근간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다. 하층백인의 토지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인디언 말살정책이 보다 적극적으로 펼쳐지고 흑인의 지위가 노예로 굳어졌다. 자유흑인들이 백인 기층민과 합세할 경우 대농장주들의 기득권 유지가 어려워진다는 계산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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