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인복이 많다. 어려웠던 시절 그들의 진가와 됨됨이를 알아봐 주고 도와준 귀인이 있었기에 남다른 성공을 일굴 수 있었다. 통신ㆍ음향기기 업체 삼신이노텍의 김석기(46) 사장도 인복을 타고난 사람이다. 김 사장이 삼신이노텍의 전신인 헤드폰 제조업체 삼신전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85년. 학생운동으로 대학(조선대 전자공학)을 마치지 못한 채 군 복무를 마치고 취직하려던 그는 ‘운동권 출신’으로 찍혀 번번이 퇴짜를 맞다가 부친의 신원보증으로 가까스로 삼신전자의 생산직 사원에 채용됐다. 김 사장은 기회를 준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덕에 4개월 만에 생산라인 반장이 됐다. 그런데 이듬해 당시 환갑을 맞은 삼신전자의 창업주가 그에게 회사를 팔 의향을 내비쳤다. “사회 전반적으로 노조 설립이 한창 붐일 때에요. 창업주께서 그즈음 이런 저런 일로 많이 힘들어 하셨죠. 무엇보다 근 15년간 회사를 꾸려 왔던 만큼 일선에서 물러나고 싶어하셨어요. 그러던 차에 생산라인에서 꼼꼼하게 원가를 따져가며 일하던 젊은 저를 잘 봐주셨던 것 같아요. 당시 회사 순자산이 1억3,000만원 정도였는데 한 달에 500만원씩 갚는 조건으로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삼신이노텍은 일종의 주변기기 업체다. 카세트 워크맨이 아닌 헤드폰을, 컴퓨터 본체 대신에 스피커를 만든다. 또 노래방기기에 쓰이는 마이크, 휴대폰용 이어폰으로 돈을 번다. 본체가 유행을 타는 제품이다 보니 본체의 액세서리를 담당하는 삼신이노텍의 부침도 적지 않았다. CD 플레이어의 등장으로 헤드폰 납품처인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업체들이 잇따라 부도로 쓰러지던 92~95년은 김 사장에게 정말 힘든 시기였다. “자재를 공급하던 협력사 사장들에게 ‘3개월만 무상으로 자재를 공급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아버지뻘 되는 사장님들이 흔쾌히 들어주셨어요. 평소에 돈 관계를 하면서 신뢰를 쌓았던게 도움이 됐죠. 암튼 공짜로 자재를 들여와 물건을 팔아서 직원 월급을 주고, 다시 직원들에게 돈을 빌리고 하는 식으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외환위기 시절에는 용산 상가의 한 거래업체가 거짓말탐지기에 들어가는 부품을 납품할 업체를 찾던 일본 업체를 소개시켜줘 부도 위기를 모면했다. 현금 구경하기 힘든 때 일본 업체가 1년간 5억원 가량을 현금결제해준 덕분이다. 거래업체에 ‘품질과 기술력 만큼은 최고’라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면 그런 행운은 없었을 터. 그래선지 김 사장은 “사업에서는 기술 개발로 시장 수요에 부응하는 제품을 먼저 내놓고 거래처와 신뢰를 쌓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신이노텍은 지난 2000년 가수 엄정화가 아이디어 상품인 ‘이어붐 마이크’를 귀에 끼고 노래를 부르면서 히트를 쳤고, 이듬해 중국 천진으로 생산공장을 이전했다. 국내는 연구개발과 영업ㆍ관리만 전담한다. 김 사장은 “제조업을 하려면 기술력과 생산라인, 영업을 위한 판매 네트워크를 갖춰야 한다”며 “상품 기획에서부터 단가 결정까지 모두 직접 해야 경쟁력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에는 구매조건부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반년여의 연구 끝에 휴대폰의 주변기기인 ‘블루투스 스테레오 헤드셋’을 개발, LG전자에 납품을 시작해 주목을 끌었다. 고부가가치 헤드셋 진출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은 것. 김 사장은 “휴대폰은 엄청난 장치산업이고 계측장비가 많이 필요하지만 주변기기는 그렇지 않다”며 “액세서리업체도 다양한 제품 출시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점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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