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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한국을 보다] L자형 침체 이어지는데… 정부·정치권 리더십 부재로 정책실종

■ 한국경제 일본 전철 따라가나<br>잠재성장률 3%로 추락… 고령화 등 어두운 그림자<br>포퓰리즘·이해당사자 충돌… 불황 탈출 기회 놓쳐<br>과감한 구조조정 단행 등 악역 맡을 사람 필요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일본 경제에 대해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발언을 꺼냈다. 어 회장은 "일본의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며 "독도 이슈만 해도 일본이 더 시끄러운 것은 (한국과의) 자신감 차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2012년 IMF 연차총회는 여러 면에서 일본 경제에 의미 있는 행사였다. 일본은 1952년 IMF 회원국 자격을 얻었다. 올해는 가입 60주년을 맞는 해이다. 일본은 IMF 체제에 들어선 지 12년 만인 1964년 IMF 연차총회를 유치했다. 총회가 열린 64년에는 도쿄올림픽이 개최됐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으며 세계 최초 고속철도인 도카이도 신칸센이 개통됐다. 일본 경제의 화려한 서막은 IMF를 통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일본의 장기불황은 전성기 시절 일궜던 빛을 완전히 바래게 만들었다. 이제 일본은 전세계에서 장기불황의 대명사로 통한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올해의 상황은 일본과 너무나 흡사하게 돌아가고 있다.

우리가 사상 최고 수준의 국가신용등급 상향을 자축하는 사이 고령화와 저성장이라는 해묵은 이슈는 물론이고 침체된 부동산경기와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에 서서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 저성장 국면이 예고되고 있고 이후에도 잠재 성장률이 3%대로 곤두박질친 것 또한 일본과 비슷한 양상이다. 무엇보다 이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이 리더십 부재에 빠져 있는 모습은 판박이라 할 정도로 닮았다.

◇일본 장기불황 닮은 꼴 우려=우리나라는 일본의 압축성장을 모델 삼아 경제성장을 일궈왔다는 점에서 저성장 국면에서도 일본과 유사한 문제점이 많이 나타난다. 일본형 장기불황을 닮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자주 비교되는 것은 부동산 버블 형성과 붕괴, 이 과정에서 증가한 가계부채와 금융위기 가능성이다. 일단 수치상으로 보면 부동산 버블과 금융기관 건전성 모두 일본에 비해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1ㆍ4분기 말 전체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48.5%로 일본에서 버블이 붕괴될 당시의 100% 수준보다 훨씬 낮다.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기 전인 7년간(1984~1990년)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 300% 넘게 오른 반면 우리나라는 IMF 이후 80% 상승하는 데 그쳤다.

급격한 고령화와 이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도 닮은 꼴이다. 고령화는 생산인구 감소와 소비부진으로 직결된다. IMF 연차 총회 방문차 도쿄를 방문했던 윤용로 외환은행장은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경제활력 저하, 양극화 등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며 "현재 일본 국민이 발행 채권의 95%를 사주고 있는데 나이든 분들이 죽고 난 후 소화 능력이 없어지면 어떻게 할지 고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안이한 정책대응이 불황 늘린다=1990년대만 해도 일본은 불황의 시작이 '경기사이클'의 일부인 것으로 여겼다. 경기부양책과 금리인하를 통해 충분히 사이클 방향을 돌릴 수 있다고 봤다. 되짚어보면 일본 정치권과 정부의 판단 미스였고 정작 필요한 건 과감하고 근본적인 대책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잦은 리더십 교체로 사실상 장기불황에서 벗어날 방법과 시기를 모두 놓쳤다.

진영욱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이 때아닌 '매파 장관론'을 역설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진 사장은 IMF 연차총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차기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은 반드시 매파가 와야 한다"며 "이도 좋고 저도 좋은 비둘기가 아니라 악역을 맡을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바람을 타지 않는 소신 있는 장관이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당장 급한 건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부분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경제는 연평균 3.1% 성장했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2002년까지 5년간 평균 5% 성장한 것에 비해 2%포인트 가까이 낮다.

회복하는 힘도 떨어졌다. 1998년 -5.7%에서 1999년 10.7% 반전됐지만 2009년 0.3%에서 2010년 6.3%로 V자가 U자로 완만해졌다. 올해 성장률은 2%대 중반에 그치고 내년에도 3%대에 그친다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ㆍ미국 등 전세계가 1990년대 일본과 유사한 상황에 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고령화ㆍ공급과잉ㆍ국가부채 등이 대부분 국가에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이해당사자 간 정치적 갈등으로 문제 해결이 지연되고 있다.

구본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ㆍ유럽 등 선진국이 모두 정책대응을 벌써 4~5년 늦추면서 경제가 점점 일본화되고 있다"며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가 일본 경제를 일부 구조조정 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시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진 예를 들었다. 또 다른 충격이 발생할 경우 세계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해당사자 간 양보를 통해 부실을 걷어내고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장기불황에서 근본적으로 탈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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