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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시대와 불안심리
입력2003-10-16 00:00:00
수정
2003.10.16 00:00:00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후 40여년동안 성장에 익숙해져왔던 기업과 개인들이 저성장시대를 맞아 치열한 생존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과거 은행에서 돈 빌려 사업확장에만 열을 올려왔던 기업들은 이제 `마누라와 자식`빼놓고 모든 것을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무한경쟁의 시대를 맞았다. 적과의 제휴는 물론이고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학만 졸업하면 평생직장이 보장되고 적당히 회사생활을 하면 노후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되던 개인들도 미래의 장밋빛을 접고 이제 도태되고 퇴출되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98년 IMF이후 기업들과 국민들이 겪고 있는 세계화와 개방화라는 피할 수 없는 시대상황을 맞아 겪고 있는 우울한 현실이다. 여기에다 남북한 문제라는 난제, 지역 및 세대와 계층간 갈등이 중첩되면서 최근의 한국사회는 한마디로 극심한 `아노미`상태에 빠져들었다. 우리사회 전반에 저성장시대의 그늘이 짙게 깔리며 모두가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저성장의 영향이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업종중 하나가 유통 및 식품제조업 이다.
내수업종을 대표하는 이들 업종이 최근 겪고 있는 변화의 몸부림은 보기에도 처절할 정도다. 한마디로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 한다는 것이다. 몸집 줄이기, 기업 인수와 합병, 경쟁사와의 제휴 등은 기본이고 업종변신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종업종의 대표주자로 귀에 익숙한 기업중 일부는 전혀 다른 기업으로 변신해버렸다.
지난 몇 년 동안 고성장을 구가하던 유통업계는 최근 들어 불경기에 따른 마이너스 성장으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지난 12일 끝난 백화점 가을 정기세일도 10% 정도 역신장했다. 8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다. 그나마 나은 할인점도 마찬가지로 4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백화점 할인점이 이 정도이나 패션몰이나 재래시장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문을 닫는 상점들이 즐비하고 상인들은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진지 오래라며 자포자기하는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유통업계는 “백약이 무효하다” “정부가 어떤 내수진작 카드를 내놓아도 달라질게 없다”면서 불경기에 혀를 내두르고 있는 실정이다.
소비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돈 씀씀이를 위축시키는 것은 불경기 탓만은 아니다. 정치라는 외부변수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빚어지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정국은 국민들에게 극도의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벌써부터 국내는 선거국면으로 접어든 느낌이고 선거의 어수선함과 불안감에 국민들은 소비는 커녕 지갑지키기에만 몰두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부동산버블과 정부의 강경대응이 자칫 일본식 장기불황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한 몫하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등 선진시장에서는 경기회복이라는 훈풍이 불 조짐인데 우리만 외톨이로 불경기를 심하게 겪고 있는 것처럼 비쳐진다.
그러나 이 같은 불경기에도 잘 나가는 기업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들 기업들의 특징은 최악의 경영환경과 급변하는 소비자 니즈(Needs)에 발빠르게 대응하면서 변신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내부적인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 미리 대응해온 기업들만이 살아남고 있는 것이다. 초고가와 초저가 상품만을 취급하는 기업들이 유통업계에 `마이다스의 손`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잘 말해준다.
개인들도 마찬가지다. 투잡스(Two jobs)가 보편화해 가고 있고 `인생 3모작`이라는 말이 직장인들 사이에 유행어처럼 회자되고 있는 세태다.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자신의 몸값을 올리지 않으면 소위 `사회적 엘리트집단`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사회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며 많은 젊은이들이 이민을 동경하고 있는 사실도 저성장시대가 빚은 우리사회의 한 단면이다.
개인,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들의 불안심리부터 먼저 해소돼야 경제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간다. 기업이나 개인들이 저성장시대에 돌입한 우리사회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해가려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한게 아닐까.
<조희제(생활산업부장) hjch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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