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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10월14일. 엔씨소프트(036570)는 발칵 뒤집혔다. 최대주주인 넥슨이 지분 0.38%를 추가 매입했기 때문이다. 당시 넥슨은 이에 대해 투자목적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넥슨이 엔씨소프트를 적대적 인수합병(M&A)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공개적으로 친구에서 적으로 등을 돌렸다. 넥슨이 엔씨소프트에 경영참여를 선언하면서 경영권을 둘러싼 게임업계 양강의 싸움이 본격화될것으로 전망된다.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넥슨은 엔씨소프트 주식 330만6,897주(지분 15.08%)에 대한 보유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변경했다. 엔씨소프트의 최대주주는 넥슨이고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국민연금이 각각 9.9%와 7.8%의 지분을 갖고 있다.
시장전문가들은 이번 넥슨의 결정을 두고 그동안 시장에 떠돌던 적대적 M&A가 현실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넥슨은 2012년 6월 엔씨소프트와 글로벌 시장 협력을 목적으로 김 대표로부터 엔씨소프트 지분 14.7%를 인수했다. 이후 지난해 10월 8만8,806주(0.4%)를 추가 획득하면서 넥슨의 보유지분이 15%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넥슨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엔씨소프트와의 기업결합을 승인 받으면서 엔씨소프트의 M&A와 지배구조 등에서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당시 넥슨은 적대적 M&A설에 대해 경영권 분쟁은 없다고 선을 그었으나 이번 주식 보유목적 변경으로 그동안의 입장을 뒤집은 셈이다.
넥슨의 한 관계자는 "지난 2년 반 동안 엔씨소프트와 공동개발 등 다양한 협업을 시도했으나 기존의 협업구조로는 급변하는 정보기술(IT) 업계의 변화속도에 대응하기에 한계를 느꼈다"며 "양사의 기업가치가 증대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투자자로서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반면 엔씨소프트는 넥슨의 경영참여 선언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엔씨소프트의 한 관계자는 넥슨의 이번 투자목적 변경에 대해 "지난해 10월 단순 투자목적이라는 공시를 불과 3개월 만에 뒤집은 것"이라며 "넥슨 스스로가 약속을 저버리고 전체 시장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방적인 경영참여 시도는 시너지가 아닌 엔씨소프트의 경쟁력의 약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며 "결국 엔씨소프트의 주주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배당금을 기존 1주당 600원에서 3,430원으로 상승하는 창사 이래 최대 주주배당금을 의결한 바 있다.
사실 김정주 넥슨 의장과 김 대표는 서울대 선후배 관계면서 한때는 같은 꿈을 꿨던 대표적인 게임 1세대다. 이들은 서로 친하게 지내며 국내 게임업계를 이끌어왔다. 업계에서도 김 의장과 김 대표의 관계에 대해 좋은 평가가 많았다.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2012년 6월이다. 당시 넥슨 일본법인은 엔씨소프트 최대주주였던 김 대표의 지분 14.7%(총 3,218,091주)를 인수했다. 김 대표와 김 의장의 개인적인 친분에 기반한 거래였다. 두 회사 및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당시 두 최고경영자는 글로벌 게임 업체 인수 및 경영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도원결의했다. 목표는 세계 최대 게임 업체 중 하나인 EA(Electronic Arts)였다.
김 의장은 엔씨소프트 지분을 매입함으로써 김 대표에게 실탄을 지원했다. 이를 기반으로 둘이 함께 글로벌 게임 회사를 인수하고 김 대표가 EA 대표로 가는 것이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많은 노력을 펼쳤지만 EA 인수에는 실패했다. EA 측은 지분을 일부 매각하되 경영권까지는 넘길 계획이 없었다. 반면 두 사람이 원한 것은 단순한 지분이 아니라 경영권이었다.
EA 인수가 실패로 돌아간 후 엔씨소프트와 넥슨의 동상이몽이 시작됐다. 엔씨소프트는 넥슨에 대해 단순한 최대주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목표로 했던 EA 공동인수가 실패로 돌아갔으니 원래대로 돌아가 각자의 길을 걷기를 원했다. 최대주주이지만 엔씨소프트 경영에 넥슨의 어떤 간섭을 받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 결과 현재 엔씨소프트 이사회에는 넥슨 측 인사가 한 명도 없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넥슨 입장에서는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엔씨소프트에 8,000억원을 투자했는데 아무런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당초 목표인 해외 기업도 인수하지 못했고 엔씨소프트의 개발 DNA를 자산화시키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엔씨소프트 주가도 떨어져 손해가 막심했고 넥슨이 보유한 게임들의 성과도 예전만 못해 경영지표도 안 좋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넥슨과 엔씨의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넥슨의 입장에서 엔씨소프트가 기대와 달리 부진한 실적을 내면서 손실을 입자 그에 대한 항의로 경영참여를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적대적 M&A까지 갈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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